카리타스와 쿠피디타스
어거스틴이 접한 세계는 헬레니즘이었다. 어거스틴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때까지 여러 헬레니즘 학파를 섭렵하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네오 플라토니즘이 어거스틴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네오 플라토니즘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 계시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주신 본래적인 능력에 대한 성찰이다.
인간이 타락하여 그 본래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지만 그 형상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을 인간 내면에 부여한 자연계시라고 본다면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네오 플라토니즘은 바로 자연계시의 이론적 추구인 셈이다.
어거스틴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했을 때 비로소 죄인을 찾아 오셔서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는 특별계시를 만난 것이다. 그러한 특별계시는 자연계시를 파괴하지도, 대치하지도 않는다. 특별계시는 자연계시를 구속하여 잃어버린 본래성을 회복시켜 준다.
플라톤은 에로스의 올바른 길은 이 땅에 있는 아름다운 것에서 시작하여 하늘에 있는 아름다움에 목표를 두고 올라가는 것이라 하였다. 즉 하나의 아름다운 육체에서 두개의 아름다운 육체로, 아름다운 육체에서 아름다운 행동으로, 아름다운 행동에서 아름다운 지식의 형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지식의 형상에서 아름다운 지식 자체로 올라가는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이를 해석한다면 에로스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다. 그러나 결코 에로스 자신이 이를 이룰 수는 없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에로스 자체가 온전한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니그렌이 지적한대로 어거스틴은 바로 이러한 삶의 과정을 겪었다. 그는 육체의 쾌락을 추구했고, 그 다음에는 시세로의 호렌시우스를 접하고는 철학적 지혜를 추구했고, 네오 플라토니즘을 만나고는 신의 사랑을 갈망하였다.
그러나 거기서 신의 사랑을 만날 수 없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심한 후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만났다.
무조건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이 바로 어거스틴이 만난 아가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필요하기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데서 넘치는 것이다.
그것은 에로스가 결핍을 느낀 인간의 영혼의 필요에 의해서 생기는 것임에 반해 아가페는 충만해서 넘쳐 흘러가는 것이다. 그 넘쳐나는 아가페가 결핍된 인간을 찾아온다.
바로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먼저 택하신 것이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
그리고 죄인을 구속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고 또 구속하는 본질이다.
인간에 내재해 있는 에로스는 이기적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충만하신 데 반해 인간은 결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밖으로부터 채울 것을 구해야 한다. 즉 에로스는 아가페로부터 항상 채움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영원이시기에 필요한 것이 없으신 반면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 속에 있기에 계속적인 필요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기적인 사랑인 에로스가 아가페로부터 구속을 받고 또 채움을 받을 때 그 사랑은 정화된 인간의 사랑이 된다. 이것이 아마도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의 사랑의 본래성일 것이다.
이 사랑을 어거스틴은 ‘카리타스’(caritas)라고 불렀다. 이에 반하여 구속받지 못하고 채움 받지 못한 이기적이며, 일시적인 사랑을 ‘쿠피디타스’(cupiditas)라고 불렀다.
무엇을 선택하며 사는 가는 인간의 자유에 속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위엣 것을 권하신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구를 만족스럽게 채울 것은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채움을 받을 때 인간은 모든 피조물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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