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를 생각하며

 

밤 시간이다. 예수는 혼자였다. 그는 저 멀리 있는 둥근 도시의 성벽을 바라보다가 그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예수가 도시에 가까이 다가가자 환희의 발자국 소리와 즐거운 웃음소리와 기타소리 등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 성문을 두드리자 문지기가 성문을 열었다.

예수는 대리석으로 지어진 집을 보았다.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들 위에는 화환들이 걸려 있고 삼나무 횃불들이 꽂혀 있었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는 홀을 지나자 축제가 열리고 있는 큰 홀이 나타났다.

예수는 자줏빛 바다 조개로 장식된 소파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붉은 장미로 만든 화환을 쓰고 있었는데 포도주를 마셔서 입술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예수는 그 사람의 뒤로 가서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자네는 왜 이런 식으로 사는가?” 그 젊은이는 몸을 돌려 그를 알아보고 대답했다. “저는 이전에 문둥병자였는데 당신이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가 이런 식으로 살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합니까?”

예수는 그 집을 나와 다시 거리로 향했다. 잠시 후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아주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진주 신을 신은 여인을 보았다. 그녀 뒤에는 두 가지 색으로 조화를 이룬 망토를 입은 젊은이가 사냥꾼처럼 살금살금 뒤따르고 있었다. 그 여인의 얼굴은 우상처럼 아름다웠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그 젊은이의 두 눈은 정욕으로 불타고 있었다.

예수는 그들의 뒤를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그 젊은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대는 왜 그런 눈으로 저 여인을 보는가?” 그를 알아본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다. “전에 저는 소경이었는데 당신이 제게 빛을 주셨지요. 당신이 보게 해 주신 이 눈으로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보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란 말씀입니까?”

그래서 예수는 앞으로 달려가 여인의 옷을 잡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여인이여, 죄의 길 말고 다른 길을 걸을 수는 없는가?” 그 여인은 몸을 돌려 그를 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저의 죄를 용서해 주셨지요. 그러나 이 길은 즐거운 길인 걸요.”

그래서 예수는 그 도시를 떠났다. 도시를 나올 때 예수는 길가에 앉아서 흐느끼고 있는 젊은이를 보았다. 예수는 그 젊은이에게 다가가 그의 긴 머리털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대는 왜 울고 있는가?”

그 젊은이는 얼굴을 들어 그를 알아보고 대답했다. “한 때 저는 죽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셨습니다. 제가 우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아주 짧은 단편 소설 「선행자」의 전문이다. 그는 1854년 영국에서 태어나 1900년 프랑스 파리의 길거리에서 객사하였다.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년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옥중기」를 읽어보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깨달은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파리의 길거리에서 객사하기까지의 그의 삶은 고뇌와 방황 그리고 방탕하기까지 하였다. 거룩한 삶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능력은 없었다. 그의 짧은 단편 「선행자」는 그러한 자신의 삶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떨어질 때는 미풍에 실려 우아한 모습이었고, 떨어져서도 양지 바른 곳에 포근히 누워 고운 모습이었는데, 눈비가 내리고 거친 바람이 부는 오늘은 비에 젖고 밟히고 찢겨 속살마저 드러내며 그 운명을 다하는 낙엽과 더불어 또 나의 한해를 보내야 한다.

지난 한해의 나는 바리새인처럼 주님의 은혜를 애써 외면하며 나의 의를 내세우고 자랑하는 위선자는 아니었을까? 아니면 주님의 은혜를 시도 때도 없이 사모했지만 삶은 죄인의 자리에서 맴돌아 주님의 은총을 값싼 것으로 전락시킨 무능력자는 아니었을까?

내가 전에 문둥병자였는데…나의 장미 꽃 화환이 문둥병보다 더 아름답고, 나의 붉은 포도주가 주님의 피보다 더 진하단 말인가? 내가 소경이었는데…나의 뜬 두 눈은 감긴 두 눈보다 더 밝고, 나의 정욕에 이글거리는 눈빛은 어두움에서 침묵하던 눈빛보다 더 강렬하단 말인가?

고통보다 더 감미로운 죄의 유혹이여…내가 바로 전에 죽은 자였다. 죽은 자는 울지 못한다. 내가 살았기에 지금 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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