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청년의 증언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14:51.52).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가다가 최초의 ‘스트리킹’을 하여 기네스 북이 아닌 성서에 기록된 그 청년은 누구였을까?
그가 바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 자신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그는 일생동안 그 일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열망은 있었으나 믿음은 없었고, 열정은 있었으나 깨달음은 없었던 청년의 두려움과 미숙함…그러나 훗날 주님에 대한 믿음과 깨달음 가운데 그 벌거벗은 기억조차도 승화되어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가 증언한 마가복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복음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의, (Arche tou euaggeliou Iesou Christou huiou Theou). 한때 무리가 두려워 벌거벗고 도망했던 그 청년이 좇은 분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마가가 서두에서 증언한 그리스도는 베드로의 고백으로 완성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8:29). 그분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침과 능력의 권세를 나타내시는 것을 시작으로 병을 고치고 더러운 것을 정결케 하고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보이셨다.
유대인들이 생각한 민족 구원의 메시야가 아닌 인류를 구속하시는 메시야로서의 권세를 보이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에 대한 적대자와 추종자로 나뉘게 되고 하나님 나라는 계속하여 선포되었다(2:18-4:34).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 내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의 전제로 제자들에게 믿음과 깨달음이 요구되었다. 마가는 마태와는 달리 이 믿음과 깨달음을 분리하여 설명한다.
마가는 4:35부터 5:43에서 믿음의 문제를 다룬다. 풍랑 속에서, 귀신을 쫓아내면서, 혈루증 여인을 고치면서, 죽은 소녀를 살리면서 믿음의 본질을 가르친다. 그리스도를 좇는 자는 제일 먼저 그를 믿는 것을 배워야 한다.
믿음은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다섯 개의 떡의 기적으로 시작하여 벙어리를 고치심까지, 또 일곱 개의 떡의 기적으로 시작하여 소경을 고치심까지(6:30-8:26) 깨달음의 본질을 가르친다.
마가는 떡의 기적이 깨달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임을 반복하여 말한다(6:52, 8:19,20). 그러나 믿음이 없어 꾸중을 받던 제자들은 계속하여 깨달음이 없기에 질책을 받고 있다. 마가는 제자들의 입에서의 깨달음이 나오지 않자 결국 벙어리의 귀와 입이 열린 사건과 소경의 눈이 뜬 사건을 극화시켜 깨달음의 멧시지로 전하고 있다.
그 깨달음은 가이사랴 빌립보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믿음과 더불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길의 유일한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것은 마가만이 아니고 믿음과 깨달음이 없던 제자들 모두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사랴 빌립보가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리라.
또 마가가 서두에서 증언한 ‘하나님의 아들’은 이방인인 한 백부장의 고백으로 완성된다. 백부장이 예수님의 운명하심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하였다(막15:39).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였지만 제자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가는 오히려 예수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실 때마다 제자들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8:31-38), 서로 누가 큰가 쟁론하고(9:30-37), 자리다툼을 하였다(10:33- 45)고 기록하였다.
그래서 마가는 변화산 아래서 다시 벙어리를 고치신 사건(9:14-29)과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다시 소경이 눈뜬 사건(10:46-52)을 믿음과 깨달음의 그림으로 증언한다.
제자들이 모두 도망치고 여인들이 먼 발치에서 보고 있는 배경 가운데 백부장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였다. 마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소리(1:11, 9:7)에 화답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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