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이야기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아버지를 말해야 한다. 아버지는 가족의 출발점이고 가족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가족의 가장은 이름 말고는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의 이름은 그 시대에 흔했던 이름 중의 하나인 세베대였다. 추측컨대 그는 아마도 갈릴리 시골 어촌에 사는 평범한 어부였을 것이다. 그가 어부가 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어부였기 때문이고 그의 아버지가 어부인 것은 또 아버지의 아버지가 어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어부인 세베대 역시 별수 없이 그의 두 아들도 어부로 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삶의 형태는 운명지어졌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의 두 아들은 그 운명적 굴레를 벗어 던졌다. 바로 나사렛에서 온 청년 예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 형제는 배와 그물과 부모를 버려두고 집을 떠나 버렸다. 평범한 어부 세베대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들들을 예수님께 드린 아버지 세베대의 이름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의 동반자인 어머니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그런데 세베대와 달리 이 어머니의 이름은 알 수가 없다. 대개의 어머니가 그렇듯이 그냥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미로 불리었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그녀도 가난한 어부의 딸로 태어났을 것이다.
부모가 정해주어 남편을 만났는지, 동네에서 바닷가로 이어지는 오솔길에서 서로 눈이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가난한 어부인 세베대의 아내가 되어 두 아들을 낳았다. 바로 나사렛 예수를 만나 가출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두 아들이 집을 떠나는 날 큰 충격을 받아 자리에 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강한 것처럼 두 형제의 어머니는 어느 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들들의 선생님을 찾아갔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도 좋다. 다른 집의 아이들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할 바 아니다. 내 아들들만 잘된다면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십자가의 길임을 알았을까?
이제 세베대의 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큰아들의 이름은 요한이고 동생은 야고보다. 두 형제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그들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빈촌의 어부로 평범하게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이들 형제는 무척 급하고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별명이 우뢰의 아들이었다. 훗날 예수께서 사마리아에서 배척을 받으셨을 때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게 하자”(눅9:54)고 하여 야단 맞은 적도 있다.
어느날 동네 친구인 베드로의 형제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집을 떠났다. 이들에게 같은 동네 친구인 베드로는 항상 경쟁자였다. 착하고 조용한 성품의 동생인 안드레와는 달리 베드로는 다혈질이고 덤벙대는 편이었다. 어쩌면 요한의 형제와 비슷하여 경쟁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자기들 중에 ‘누가 큰 자인가?’는 예수님을 좇던 제자들 모두의 관심사였던 것은 분명하다(막9:34). 그 중에서도 수제자 그룹이었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치열한 경쟁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베드로는 요한의 형제에 비해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변화산에서 큰 영광을 보았을 때 단순한 베드로는 자기의 초막은 생각도 못하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고자 하였다.
그에 반해 야심이 많은 요한과 야고보는 주의 영광 중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고자 하였다(막10:37). 아마도 이들의 집요함이 어머니의 치맛바람까지 동원하게 하였던 것 같다(마20:20).
그러나 예수님이 이들을 부르신 이유는 자신이 마신 잔에 이들을 동참시키기 위함이었다. 후일 주님의 십자가를 깨닫고 정화된 이들 형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헤롯에 의하여 칼로 죽임을 당하였다(행12:1). 그는 일찍 순교함으로 주님의 잔에 동참하였다.
자신의 사역지 에베소에서 멀리 떨어진 에게해의 밧모라는 작은 돌섬으로 유배간 요한은 늙어 죽도록 주님의 잔에 동참하였다. 세베대 부부와 두 아들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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