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동굴의 혈맹
시작은 작은 자로 겸손하고 아름다웠지만, 여호와의 뜻을 좇는데 실패하고 자만해져 버림받은 사울왕은 결국 악령의 시달림 속에 광폭과 후회 그리고 증오와 후회를 반복하는 광인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이 시기에 왕의 밑에 있던 신하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두려움의 때가 되고 백성들에게는 폭정에 시달리는 고난의 때가 되었다.
여호와의 신은 사울에게서 떠나고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소년 다윗은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을 받았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운명이 걸린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거인 골리앗을 물리침으로 백성들에게 알려졌고 사울과의 숙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다윗에 대한 시기 때문에 광기에 사로잡힌 사울의 애증은 다윗의 생명을 위협하였고 다윗은 이를 피해 이곳 저곳으로 전전하게 되었다. 가드 왕 아기스에게까지 찾아간 다윗은 거기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하고 마침내 아둘람 동굴에 이른다.
아둘람 동굴은 중국 소설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이나 영국의 로빈 후드의 이야기에 나오는 숲 또는 우리 나라의 임꺽정전의 청석골 같은 곳으로 박해받는 사람들이 피신해온 비밀 장소였다.
사울왕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은 다윗이 아둘람 동굴로 피신을 하자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의 집 사람들과 사울의 학정 아래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 그리고 원통한 자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오늘날 우리 나라도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소위 3D라고 하는 더러운 일 (dirty), 어려운 일(difficult), 위험한 일(dangerous)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둘람 동굴에는 다른 의미의 3D가 있었다.
사울의 폭정 아래서 환난 당한 자(distress), 빚진 자(debt), 마음이 원통한 자(discontent)등 400인이 모여든 것이다(삼상22:2). 다윗은 아둘람 동굴 사람들의 장관이 되었다. 다윗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둘람 동굴에 모여 후일을 도모하며 혈맹을 맺었다.
아둘람 동굴 사람들은 후일 다윗과 함께 왕국을 세운 중심 인물들이 되었다. 그 중에 세 용사의 이야기는 이들의 혈맹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고 그들의 영채가 베들레헴에 있을 때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사모하며 “누가 물을 마시게 할까”하자 세 용사가 블레셋의 적진을 뚫고 물을 길어왔다.
다윗은 이 물을 생명을 걸었던 세 사람의 피라고 하며 마시기를 즐기지 않았다(삼하23:13-17). 자신들이 섬기는 왕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은 세 사람과 그들의 생명을 아끼는 다윗의 관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없더라도 순결하고 순종적인 삶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좇는 일에 한치의 오차도 없다. 그것이 바로 아둘람 동굴의 혈맹의 본질이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권을 허락하셨지만 그것을 이루어간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한 아둘람 동굴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당시의 사울왕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한 억울한 사람들로 다윗과 함께 새 왕국의 꿈을 갖게 되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아둘람 동굴의 혈맹은 필요한 것인가?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왕국을 허락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에게 비전을 주셨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오늘의 아둘람 동굴 사람들은 필수적이다.
어떤 공동체든 그 공동체가 세워지고 그 공동체의 목표가 이루어져 가는데는 반드시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드린 소수의 헌신자들이 밑바닥에 있다.
우리 모두는 예전에 이 세상에서 환난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방주 곧 아둘람 동굴에 모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혈맹을 이룬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피신하여 이곳에 왔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왕국을 탈환하는 전쟁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블레셋의 적진을 뚫고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올 세 용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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