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의 요셉 이야기

 

사람의 이름에는 분위기가 있다. 요셉이라는 이름이 주는 분위기가 온화하고, 순전한 것은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됨됨이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 전체에 여덟 명의 요셉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요셉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은 간교한 야곱을 아버지로, 언니 레아를 경쟁 상대로 시기심에 불타던 라헬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요셉이다(창30:24).

라헬이 처음 난 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한 것은 또 다른 아들을 더 낳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다. 라헬은 그 열망을 이루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창35:18).

부모에 반해 아들 요셉은 거의 흠을 발견할 수 없는 순전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꿈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게 되지만 결국은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되고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다.

이 요셉은 라헬이 이기적인 열망 때문에 붙여준 요셉이라는 이름을 정화시키는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요셉은 다윗왕 때의 시인 아삽의 아들이다(대상25:2). 이 요셉의 아버지 아삽은 우리가 즐겨 묵상하는 시편 73편 등 많은 시편의 저자이다.

다윗왕은 성전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찬양대원 288인을 임명하였다. 아삽의 아들 요셉은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자로 선발되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깊은 영감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사람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 요셉으로 말미암아 요셉이라는 이름의 분위기는 더욱 고양되지 않았을까?

 

그 다음에 등장하는 바벨론 포로기의 두 사람의 요셉은 분명한 대조가 된다. 하나는 포로에서 유대 땅으로 돌아온 요셉인데 그는 레위 지파의 족장으로 지도자였다(느12:14).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포로기 중에 본토에 남아 이방인과 결혼하여 유대인의 혈통을 더럽힌 자의 명단에 들어 있는 요셉이다(스10:42). 이 사람은 요셉의 이름의 명예에 상처를 입힌 유일한 사람이지만 단지 이방 여인을 사랑한 죄라면 용서받을 만하지 않을까?

구약의 요셉처럼 신약의 요셉도 꿈쟁이 요셉으로 시작된다. 바로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다. 이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마1:19) 자기와 정혼한 처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처리하려고 하였다.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쳐죽이는 것이 당시 유대사회의 법이었다. 요셉의 성품은 온화하고 그의 행동은 사려 깊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결국 요셉은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그 꿈으로 인하여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가게 되고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오게 된다. 요셉은 목수 일을 하면서 마리아와 함께 어린 예수와 그의 동생들을 양육하였다.

이 요셉이 아기 예수를 돌보았다면 이제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고 그의 시신을 장사한 요셉이 있다.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다(눅23:50). 그는 유대의 공회원이었지만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관여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순전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을 감싸안은 두 사람의 요셉은 기억되어야 한다.

이제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의 요셉을 찾아가 보자. 배반자 가룟 유다 대신에 사도로 추천되었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 요셉이었다(행1:23). 사람들은 선택되지 못한 요셉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요셉이 맛디아처럼 사도가 될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하자.

자, 마지막인 여덟 번째 요셉을 이야기해 보자. 이 요셉은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바나바는 위로하는 자라는 뜻으로 사도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행4:36). 그는 착한 사람으로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행11:24). 편의상 바나바로 부르기로 하자. 바나바는 구브로, 지금의 키프로스 출생이다. 말하자면 헬라파 유대인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가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히브리파 유대인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의 착한 성품과 중간적인 삶의 배경이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다소 출생의 사도인 바울과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였다(행9:27).

오늘날의 많은 요셉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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