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자의 기도

 

지금은 없어졌지만, 지난봄까지, 우리 동네에는 유령의 집이라고 불리는 집이 있었다. 원래는 아담한 이층집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집의 사방 벽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열 개도 넘는 굴뚝이 세워지고, 집 앞에는 항상 벽돌조각과 흙 그리고 쓰레기가 한 무더기씩 쌓여 있었다.

그 집에는 모녀가 살았는데 어머니의 취미는 집수리이고, 딸의 취미는 그것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매년 여름이면 하루종일 정과 망치로 벽을 뚫어 창문(?)을 만들고 겨울에는 나무를 주어다가 덧문을 해 달고 굴뚝도 새로 달았다.

그 어머니는 취미생활로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서 장사(?)를 시작했다. 양장점이라는 간판도 스스로 만들어 붙이고, 연탄가게라는 간판도 붙였다. 그런데 그 가게에는 재봉틀 한대 없었고, 옷 한 벌도 걸려 있지 않았고 그리고 연탄 한 장도 없었다.

그 모녀 둘 다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그렇게 살던 모녀는 지난 봄 어느 날 그 집에서 쫓겨나 어디론가 떠났는데,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사람들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불쌍한 마음을 갖지만 어쩌면 정작 당사자인 그들은 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바라보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가치와 행동의 체계와 지속성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하나하나 단절하여 볼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하나로 모아보면 연속성이 없어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언제나 온전하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 모두는 어떤 면에서는 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변덕스러운 가치관, 애증의 이중주 가운데 일어나는 불협화음, 인내와 분노의 뒤범벅 그리고 쇠퇴해 가는 육체로부터 위협받는 정신 등…

통합성이 발휘되지 않는 가운데 바쁘게 뛰어다니고 추구하는 일들이 많은 경우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허무함이 짙게 배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벽에 구멍을 내고, 다시 막고, 이곳 저곳에다 굴뚝을 매다는 일을 좀더 세련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쯤 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온전하지 못하기에 온전한 것을 향하여 성숙해감으로 변화는 꼭 있어야 하고 그 변화는 삶의 청량제가 된다. 그런 변화는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지 못한 변화는 어린아이라면 미숙함이고 어른이라면 방황이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정신분열증 증세일 것이다.

나는 아직 미숙하기도 하고, 이곳저곳으로 방황도 하며 이중적 삼중적 감정상태에 젖어 살기도 한다. 미숙한 것은 스스로에게는 용납되기 쉬운 것이기에 좀처럼 성숙의 길을 가고자 하는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미숙함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의 미숙함을 모르는 것이다. 방황은 습관성이라 끝나게 될 소망은 보이지 않아 정착의 확신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만 엿보아 그 힘을 발휘하려고 하는 방황의 본성은 정착하고자 하는 갈망과 함께 뒤섞여 고통을 준다.

이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심지가 곧아져서 한번 먹은 마음을 끝까지 지켜 나가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한번 찾아 온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한번 약속한 것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항상 동일하신 하나님만이 그것을 이루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어리석은 마음이 지혜롭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작은사랑이 큰사랑이 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센 자가 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없는 것에서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만이 그것을 이루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육체와 함께 정신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더 조각 조각으로 나뉘어지고 마침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이신 하나님은 그 시간을 정지시키시고 모든 것을 모으신다. 이제 영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어 우리의 시간을 성숙의 도구로 삼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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