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 떡

 

유대인들이 혐오하던 이방인이, 그것도 여자가 감히 예수를 향해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다(마15:22).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멸망 받을 대상으로, 지옥의 땔감 정도로 여겼고 여자는 남자의 종속적인 존재로 여겼다. 그런 이방인 여자 하나가 유대인인 예수님을 구세주로 부르며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는 예수님이 모든 민족의 구세주가 되심을 알았던 것일까? 또 그분은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등 모든 사람의 구세주 되심을 알았던 것일까?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의 부르짖음을 짐짓 모른 체하여 침묵하셨다. 왜 침묵하셨을까? 예수님의 침묵에 편승해서 제자들은 이방 여인의 부르짖음을 귀찮게 여겨 빨리 쫓아버릴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마15:24)고 말씀하셨다. 정말 예수님은 유대인만을 위하여 오셨기에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물론 아니다.

이방 여인은 거절하는 예수께 더 가까이 다가와서 절을 하며 도와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님은 다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라고 더욱 심한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정말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이 이방 여인을 개처럼 여기시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분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 분이다.

두 번이나 모욕적으로 거절당한 수치심에 분노할 만도 한대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대답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스스로 자신을 개라고 여겼단 말인가?

유대인에 비교해서 그런 대답을 했다면 지나친 자기 비하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개만도 못한 자신의 모습을 성찰했다면 그것은 참다운 겸손이다.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은 마침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고 말씀하셨다. 바로 예수님은 여인의 겸손한 믿음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게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셨다(요6:35). 십자가에서 찢긴 그의 몸이 바로 생명의 떡이다(요6:51). 유대인이고 이방인이고 이 세상의 아무도 그 떡을 상에 앉아서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자기 의를 가지고 설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방 여인처럼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으려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구원을 부르짖어야 한다. 상에 앉아 먹을 자격은 없지만 얻어먹을 은혜는 있기에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이 바로 큰 믿음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신다. 생명의 떡을 받아먹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간 사람들이다.

사마리아 여인, 38년 된 병자,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 문둥병자, 중풍병자, 혈루증 여인 등등 모두가 예수님 앞에 겸손히 나온 사람들이다.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우리가 고통 중에서 구원을 요청하였을 때 예수께서 “나는 너를 위하여 여기 온 것이 아니다”라고 하신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날 것일까? 그래도 “예수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을까?

만약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개처럼 취급하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 정말 이방 여인처럼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사랑의 예수님이 나를 개처럼 취급해!” 하면서 분노하여 떠나버릴 것인가? 그 대답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데에 종속되어 있다. 정말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발견한다면 부스러기 떡의 은혜를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인생은 언제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은혜의 삶을 살 것이다.

주인의 상에 앉으려는 투쟁적인 삶은 교만하여 아름답지도 않고 또 피곤하지 않은가?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며 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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