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음을 위한 기도

 

사이버 세계처럼 공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나의 내면의 어두운 궁창을 향해 생각들은 화산재처럼 분출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들이 멀리 달아나기 전에 붙잡아 하나의 형상을 빚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피조되어 한정된 시간 안에 그 형상을 빚어야 하는 것이 나의 고통입니다. 내면의 열정이 클수록 하늘 저편으로 더 빨리 날아가 잡을 수 없는 것은 또 다른 나의 고통입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일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해산의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잉태하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닮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가 정답일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전능하시기에 창조의 고통은 없었습니다. 다만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 그것을 당신의 고통이라고 말해도 괜찮은가요? 당신의 성령은 그 위에서 움직이셨습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존재하였습니다. 그 빛은 아름다워 보기에 좋았습니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어두움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어두움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내면의 궁창의 어두움도 당신이 창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나의 내면의 궁창에는 당신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빛이 나의 궁창에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나는 비로소 나만의 형상을 빚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고통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고통조차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 혼돈이 있습니다. 나는 공허합니다. 나는 흑암 가운데 있습니다. 나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오셔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빚은 형상이 곧 당신이 주신 것임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빚어진 형상은 바로 당신이 말씀하신 그 성과 같이 밝을 것입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성문들은 밤의 어두움이 없기에 닫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계21:25). 나는 소망 가운데 내가 거처할 그 성을 그리워하며 지금을 살 것입니다.

나는 기억할 수 없는 그 날의 어두움과 함께 물 속에 있었습니다. 기억할 수 없는 그곳은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그곳에서 나의 생명은 시작되었습니다. 기억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로 나의 작은 심장이 만들어질 때의 고통을 잊게 하였습니다.

당신은 물 속에서의 잉태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물과 물 사이에 궁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늘을 처음 본 나의 출생의 날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둘째 날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6). 그 궁창을 하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늘 위의 물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 꿈입니다. 구름은 훨훨 떠다니며 이곳 저곳에다 꿈을 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고 내일도 살 것입니다. 그 꿈길을 따라 당신은 이곳에 오실 것입니다.

그 꿈이 빛을 만나면 7색의 영롱한 무지개가 되어 나의 소망이 됩니다. 다시 무지개가 보고 싶습니다. 산마루와 들판의 언저리에 걸쳐 무지개가 피어나면 구름 타고 오시는 당신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내가 땅을 딛고 일어선 날 어머니는 기뻐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문호는 유배지 시베리아에서 풀려나는 날 대지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땅은 바로 나의 육신입니다. 당신이 흙으로 나를 빚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나의 몸과 흙을 동일시할 그 날을 두려워했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위대한 형상들을 빚고 떠났는데도 말입니다.

셋째 날 당신은 궁창 아래의 물들을 한 곳으로 모으셔서 바다라고 하셨고 또 드러난 곳을 땅이라고 하셨습니다(창1:9). 그래서 땅은 바다 옆에 있습니다. 남지나해에서 바라본 바다도 태평양 연안에서 바라본 바다도 푸르고 거대했습니다.

그 바다는 땅을 새롭게 해주는 거대한 정화조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오염시킬 것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바다가 없는 것입니까?(계21:1). 당신을 만나는 날까지 나에게 바다와 같은 마음을 주십시오. 그러면 이 땅에서 생기는 많은 찌꺼기들을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상한갈대, 생각하는 갈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  (0) 2012.02.10
詩19, 찬양의 기도  (0) 2012.02.09
밤에 드리는 기도  (0) 2012.02.08
겨울이 오기 전에 드리는 기도  (0) 2012.02.06
서문을 대신한 나의 이야기  (0) 2012.02.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