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근이 찾아 왔을 때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라 본토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간 아브라함은 그 땅에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갔다(창12:10).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의 잘잘못에 대한 언급이 없기에 그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기로 하자. 그보다는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의 미모 때문에 자기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염려하여 기막힌(?) 꾀를 낸 사실에 주목하기로 하자.
아브라함이 애굽 사람들에게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하여서 결국 애굽 왕 바로가 사라를 궁으로 취하여 들이는 일이 벌어졌다. 아브라함은 그 대가로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노비를 얻었다.
오늘날의 윤리적 가치에 의하면 기가 막힐 일이다. 만약에 목숨의 위협 때문에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평가를 내리겠는가? 비굴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겠는가? 바로와 아비멜렉의 반응을 보아도(창20:9) 아브라함의 처사는 당시에도 잘못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바로에게 벌을 내리시려고 한 점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내를 되돌려 받고 또 재물까지 얻어서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또 다시 그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그랄 땅으로 내려갔다. 그랄 땅에서도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여 그랄 왕 아비말렉이 사라를 취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도 역시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벌을 내리시려고 하셔서 아브라함은 사라를 돌려 받고 보상으로 은 천개를 얻었다.
이제 아브라함의 변명을 들어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이 변명을 듣지 않으면 아브라함은 파렴치한 상습범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우선 사라가 자기의 이복누이로 처가 되었음을 말한다. 이복 남매가 부부관계보다 우선할 수 없기에 궁색한 변명이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주신 지혜라고 말한다(창20:13).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생각과 윤리적 가치를 초월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가 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기근이 들자 그랄 땅으로 내려갔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곳 사람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 리브가를 자기 누이라고 하였다(창26:6).
그런데 이번에는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는 장면이 블레셋 왕에게 목격되었다. 힐문을 당한 이삭은 사실대로 말하였고 블레셋 왕은 그를 용서하고 은혜를 베풀었다. 그래서 이삭은 그 땅에 거하며 농사를 지어 많은 소득을 얻어 거부가 되어 브엘세바로 돌아왔다.
이삭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지혜를 얻은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언젠가 들은 옛날 이야기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삭의 잘잘못은 따지지 말자. 그에게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약속이 있음을 기억하자(창26:24).
아들은 아버지를 닮지만 그렇다고 꼭 그대로 답습하지도 않는다. 아브라함의 손자며 이삭의 아들인 야곱에게도 기근은 있었다(창42:1).
아브라함과 이삭이 당한 기근이 이야기의 서막이라면 야곱이 당한 기근은 이야기의 본론이며 절정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들인 이스라엘 공동체의 출애굽 사건에까지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곱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그 중심에 있다. 꿈, 형제들의 시기, 애굽에 노예로 팔림, 감옥에 갇힘, 바로의 꿈을 해석함, 총리가 됨, 그리고 애굽의 풍년과 기근, 그 기근은 가나안 땅에도 미쳐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내려가는 요셉의 형제들…
마침내 야곱 일족 70인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수백년 동안 그곳에서 번성했고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어 그곳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우리도 인생의 한 가운데서 기근을 만나곤 한다. 모든 것이 고갈되어 결핍과 굶주림에 시달릴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기근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줄 것인가? 그 기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섭리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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