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완전케 하심(마5:17-20)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토라(Torah)를 번역한 것이다. 토라는 원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삶의 원리들이다. 지혜문학 등에서는 토라라는 말을 더 폭넓게 써서 장로들의 토라, 부모의 토라, 스승의 토라 등으로 쓰인다. 토라의 의미는 그것을 준 인격체의 살아 있는 마음, 정신 등이 담겨 있는 일종의 규범적인 교훈이라는 것이다.

 

신약에서 주로 언급되는 토라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의미한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토라는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어서 토라가 모세오경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마태복음 5:17 이하에서 나오는 토라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토라를 의미한다. 모세의 토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 시내광야에 1년 동안 거할 때 받은 것으로 출애굽기 19장에서 민수기 10:10까지 해당되고, 이것을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 제2세대에게 재 천명한 신명기도 해당된다.

 

이스라엘은 민법, 형법, 정결법, 제사법 등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토라의 수여자는 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인 데 반해 이것의 수여 대상자는 타락하여 완악한 인간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토라의 형식은 완악한 인간이라는 정황 가운데 주어진 것이다. 토라의 내용은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향하여 상승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이러한 역설적인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마태복음 19장에서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에서 명확히 그려지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통하여 받은 토라를 왜곡해 갔다. 왜곡의 동기는 토라를 신성시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과, 포로기 이후에 등장한 서기관들의 권위가 토라와 맞먹는 데까지 가서 토라의 해석권이 그들에게 주어진 데서도 비롯된다. 614가지의 할라카와 그리고 수많은 장로들의 유전 등이 그것들이다. 그것이 바로 토라의 규범 자체를 변질시켰고 또 수여자의 마음과 정신이 배제된 토라의 자의적인 해석을 초래하였다. 결국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삶의 당위성을 위하여 주어진 토라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의 의를 성취하고자 하는 율법주의로 전락하게 되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왔다고 하였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규범을 자의적으로 변질 시키거나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게함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왜곡하여 율법 페기론적인 태도로 전락하는 것 모두를 경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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