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중 나중 4복에 대하여(마5:7-12)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긍휼이 여기는 자 - 긍휼은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본문에서 긍휼은 헬라어 엘레오스를 번역한 말이다. 엘레오스는 죄의 삯으로 인한 고통과 비참함에 대하여 베푸는 동정심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의 비참함에 있는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우리 자신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목마르고 굶주린 상태에서 채움을 받았기에 마땅히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상태에 대하여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백데라리온 빚진 자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을 때 임금은 그에게 궁휼을 베풀지 않고 심판에 처했다(마18:23-35). 긍휼은 곤고한 사람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마음이 청결한 자 -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약속된 복으로 채움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채움을 받은 사람은 성화되어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성결해져 가는 것의 관문은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깨끗해져 가야 한다. 더러운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지도 않게 되어가는 것이다. 또 다른 면을 지적한 타스커는 분리된 자아(divided self)의 폭정에서 벗어나 한마음(single heart)을 품는 것이 마음의 청결이라고 하였다. 시편 기자는 마음이 정결하지 않은 자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없다고 하였다(시24:3,4).
화평케 하는 자 - 분쟁과 싸움의 원인은 두 마음을 품은 음모로부터 시작된다. 그러기에 마음의 청결로 부터 오는 진실성은 화평의 씨앗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평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평을 위한 것이다. 바울은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말했다(골 1:20).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하였다. 화평케 하는 일의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 다음은 사람들이 서로 더불어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 하나님의 아들들이 화평을 위하여 애쓰지만 그것이 세상에서 다 받아 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로 말미암아 핍박을 받게된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두려움이나 패배감에 빠져서는 안된다. 핍박하는 자들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권고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들에게는 천국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