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성 애
동성애 유전자는 "면죄부"인가? / 양승훈(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남전우
2010. 10. 18. 21:10
* 읽어볼 만한 글이라 이곳에 옮겼습니다.
동성애 유전자는 "면죄부"인가?
양승훈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shyang@twu.ca)
어제는 어떤 분과 동성애(同性愛)와 관련된 토론을 했다. 그는 동성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고 했다. 이유인 즉 동성애 유전자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성애는 일종의 결핍상태이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신체적 불구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동성애를 죄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아가 동성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의 한 예로서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의 예를 들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이는 그 사람의 잘못도, 그 부모의 잘못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한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나는 그 분에게 성경이 곳곳에서 일관성 있게, 그리고 명백하게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그것은 성경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1. 동성애의 유전적 가능성
과연 동성애는 선천적, 즉 유전적인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인가? 지난 몇 십년 동안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유전적임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여러 과학자들은 동성애적 성향이 유전적일지도 모른다는 몇몇 결과들을 발표했다. 동성애의 유전적 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유전적인 변이는 정상 인구 집단의 1% 내에서 일어나는데 동성애는 10% 정도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동성애의 유전적 가능성에 대한 대표적인 몇몇 결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구조적 가능성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 라졸라(La Jolla)에 있는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의 르베(Simon LeVay)는 주로 에이즈(AIDS)나 이의 합병증으로 죽은 41구의 시신을 부검했다. 41명 중 19명은 남자들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에이즈의 합병증으로 죽었다. 16명은 이성애(異性愛) 남자들이었는데 이들 중 6명도 에이즈 합병증으로 죽었다. 그리고 나머지 6명은 여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여러 가지 다른 원인으로 죽었다.
이들 시신의 연구에 있어서 초점은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의 INAH3라는 핵(nucleus)이었다. 이들이 INAH3 핵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뇌의 이 부분은 어릴 때만 자라기 때문에 핵의 크기가 다르다면 그것은 초기 발달 단계에 존재했던 이유, 즉 환경적 요인보다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생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연구 결과 르베는 일반적으로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에 비해 시상하부의 INAH3 핵이 작음을 발견했다.
(2) 유전적 가능성
다음에는 가계 조사이다. 해머(Dean Hamer)와 그의 동료들은 2단계에 걸쳐 가계 연구를 했다. 우선 그들은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114명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가계를 조사했다. 그리고 후에는 그 중 76명을 선발하여 이들의 가계를 다른 가족들의 가계와 비교하였다. 그 결과 동성애 남자 형제의 13.5%가 동성애자임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가계와 비교 연구해 본 후 그들은 "우리가 가계를 수집함에 따라 엄마 쪽 동성애자가 아버지 쪽 동성애자들보다 더 많음을 알게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의 친인척들을 조사해 혼 후 외삼촌들과 외숙모 사촌 형제들 중에 동성애자들이 많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결과를 근거로 그들은 어떤 유전자나 유전자 그룹이 개인의 성적인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유전자가 동성애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유전자는 남자 유전자인 Y-염색체보다 여자 유전자인 X-염색체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의 2단계 연구는 자연스럽게 세포학적 접근이었다. 이들은 40명의 동성애 형제들을 선발하여 DNA 시료를 채취하였다. 그리고 유전적 관련성을 분석하기 위하여 그들은 이미 알려진 유전자 마커(gene marker)들을 활용하였다. 이들은 실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서 어떤 공통적인 DNA 부위가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40명의 동성애자 형제들 가운데 33명에게서 다섯 개 마커의 세트가 Xq28이라고 알려진 부위에서 나타남을 발견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이들은 남자들로 하여금 동성애적 성향을 갖게 하는 유전자나 유전자들이 이 부위에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3) 혈연적 가능성과 호르몬 분비
다음에는 동성애의 혈연적 가능성이었다. 베일리와 필라드(M. Bailey and R. Pillard)는 동성애 잡지 광고로부터 모집한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그들은 일란성(一卵性) 쌍둥이, 이란성(二卵性) 쌍둥이, 동성애 남자의 양자(養子) 형제 등을 중심으로 동성애자가 되는 숫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쌍둥이 한쪽이 동성애자라면 다른 한쪽도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일란성 쌍둥이 경우 52%,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 22%, 양자인 경우 11%라고 보고하였다. 즉 그들은 동성애자와 혈연적으로 가까울수록 더욱 더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동물 실험을 통해 태아기 호르몬(prenatal hormone)의 양이 동성애적 기질을 결정한다는 보고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성애를 유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선천적 유전자 변형으로 일어나는 질병(disease), 정서장애(mental suffering) 등으로 표현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2. 유전적 성향이 면죄부는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동성애의 유전자설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들에게 많이 발견되는 유전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동성애자들에게 그 유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유전자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성애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동성애적인 성향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성향이 그로 하여금 동성애를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라구나난(J. Ragoonanan)이 지적한 바와 같이 동성애에 대한 유전적 성향(genetic predisposition)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가 직접 유전된 특성(directly inherited trait)은 아니다.
그러면 동성애가 유전적이라면 그 사실이 동성애가 도덕적 일탈(逸脫)이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동성애는 다른 유전적 질병들처럼 하나의 질병에 불과한가?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자유의지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1) 자유의지와 인간의 책임
사실 동성(同性)에 대한 끌림은 정도 나름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라면서 일정 기간 동안 학교나 주변 친구들 중에 동성이지만 마치 이성(異性)처럼 끌리는 친구들이 있었던 기억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은 다른 동성 친구들과는 느낌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그런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사라지거나 후에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대부분 사라진다. 사람마다 이런 성향이 다소 강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우정의 범위 내에 있다. 그런 성향이 있는 것 자체는 정죄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동성애자들처럼 실제적인 어떤 행위로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죄를 짓는 것과도 같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죄의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은 죄에 대한 선천적인 욕구를 갖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타락한 이후 인간은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결심과 노력을 해야 하지만 죄를 짓기 위해서는 결심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죄인됨이 "선천적"이라고 해서 이것이 인간이 죄를 지어도 되는 어떤 보증서가 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결혼한 사람들이라도 간음(adultery)의 충동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그 욕구가 강하고 어떤 사람은 그 욕구가 다소 약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그 욕구를 잘 절제하고 어떤 사람은 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한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유전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천적인 간음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해서 실제로 간음을 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그런 선천적인 욕구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간음을 창조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범죄한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모든 인간에게는 죄의 소원이 있지만 자유의지를 동원하여 이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간음과 마찬가지로 강간(强姦, rape), 짐승과의 성관계를 하는 수간(獸姦, bestiality), 시체와 성관계를 하는 시간(屍姦, necrophilia), 어린 아이들과 성관계를 하는 소아성애(小兒性愛, pedophilia) 등 온갖 성적인 변태나 도착들도 인간의 타고난 "유전적" 죄성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죄성을 갖고 있는 것, 즉 죄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과 의지적으로 선택하여 그 가능성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이다. 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모든 인간들에게는 죄를 짓고자 하는 "유전적" 성향, 즉 원죄가 있다. 이 "유전적" 성향은 성경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죄에 대한 "유전적" 성향이 있더라도 결코 그것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2) 동성애 유전자와 범죄 유전자
동성애 유전설은 차라리 범죄 유전설과 비교하는 것이 낫다. 범죄인들의 심리나 유전자, 골격 등을 연구하는 범죄학(criminology)에서는 범죄 유전자(criminal gene)가 있다거나 범죄인의 골상(骨相)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실제로 여러 대에 걸친 가계(家系) 연구들을 통해 범죄자의 가정에 범죄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데이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죄 유전자로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 모두가 범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그 범죄 유전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범죄인들에게 특정 유전자가 발견되는 빈도가 높을 뿐이다. 결국 개인에게 원함은 있으나 개인이 자유의지를 동원하여 그 범죄 행위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동성애적 성향이 다소 강한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행위는 명백히 인간의 죄성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3) 동성애와 선천적 장애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의 경우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요한복음 9장에 등장하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의 경우와 비교한다. 그들은 나면서 소경된 자는 그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인 것처럼 동성애자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을 선천적 소경에 비유함은 선천성 장애인들에 대한 인격적 모독에 해당한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동성애는 분명히 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를 정신병에 비유하면서 동성애를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실제로 정신병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실정법으로도 관대히 처리한다. 정신병자가 순간적인 발작에 의해 저지른 살인이나 다른 범죄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발작에 의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성애의 경우는 정신병과는 전혀 다르다. 동성애는 자신이 주체할 수 없이 발작에 의해 동성애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비록 그 성향이 어느 정도 유전적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자신의 의지적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장애와 같이 정신병은 말 그대로 병이기 때문에 개인의 모든 삶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만 동성애는 선택이기 때문에 동성애 그 자체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동성애도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성애에 빠지는 사람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부모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자라면서 큰 상처를 받은 경우가 많다. 또한 성인이 된 후에 배우자나 이성으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동성애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앞에서 언급한 정신병에 비교한다면 동성애는 일종의 정서적 장애이며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4) 원죄와 자범죄
선천적인 소경과 동성애를 같은 결핍으로 보는 사람들은 소경이나 그 외 선천적인 장애도 결국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일어났고 동성애도 인간의 타락으로 일어났으니 동일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두 가지를 혼동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원죄(原罪)와 자범죄(自犯罪)를 구별하지 못한 데서 생긴 것이다. 원죄란 엄밀하게 말하면 죄의 성향이지 구체적인 죄의 행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죄의 성향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자범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성애적 성향은 원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나 그로 인해 동성애를 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만일 그러하다면 원죄에 속한 죄의 성향으로 생겨나는 모든 자범죄들을 정죄할 수 없게 된다.
둘째, 이것은 선택의 의미를 무시한 데서 생긴 것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죽음과 더불어 모든 죄와 고통이 온 것은 사실이다.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죄들도 결국 인간의 타락으로부터 온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창세기 3장이나 로마서 8장 등은 모든 자연계도 인간의 타락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생물학적 돌연변이가 인간의 타락의 결과라고 한다면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난 기형아도, 다른 선천적 장애인들도 결국 타락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와 선천적 장애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선천성 장애는 개인의 의지적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지만 동성애는 의지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동성애가 선택의 문제라는 점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가 동성애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성애자였다가 의지적 선택에 의해 돌아서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로부터 쉽게 알 수 있다. 선천적 장애는 의지적 선택의 결과도 아니고, 따라서 의지적 선택으로 그 장애를 벗어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동성애와는 전혀 다르다.
3. 성경 해석의 문제
그러면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가? 성경은 여러 곳에서 명백히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다.
(1) 구약에서의 정죄
창세기 19장 1-11절에 의하면 소돔 사람들의 가장 큰 죄악 중의 하나는 동성애였으며 하나님은 유황불로 이들을 멸하심으로 이들의 죄를 벌하셨다. 소돔 사람들의 죄가 성적인 죄였음은 매우 분명하다. 5절에서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한 것을 NIV 성경에서는 "우리가 그들과 성교하리라"(we can have sex with them)라고 직설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흔히 성별법(Holiness Code)이라고 하는 레위기 18장 22절의 말씀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는 동성애에 대한 정죄이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것이니라." 또한 레위기 18, 19장에서는 금지하거나 명령하는 경고에 그쳤던 규례들이 20장에서는 이 규례들을 어겼을 때 받아야 하는 형벌까지 제시한다. 10-16절은 다른 사람의 아내나 계모, 며느리, 장모와 행음한 자를 죽임 같이, 수간(獸姦)한 자들을 죽임 같이 동성끼리 행음한 자들을 죽이되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한다: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20:13). 성경은 다른 모든 성적인 범죄들과 동일하게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사기 19장 22절에는 어떤 레위 사람이 기브아에 유숙하러 들어갔다가 동성애자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기브아 성읍의 "비류들"이 그 레위 사람을 끌어내라고 요구하면서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we can have sex with him)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동성애자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로 인해 그 레위 사람의 첩이 심한 윤간(輪姦)을 당하여 죽게 된 것을 보면 이들은 폭도들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와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이 일어났다. 사사기 20장의 기록에 의하면 이 전쟁으로 인해 총 6만 5천명에 이르는 장정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 외에도 열왕기상 14장 24절이나 15장 12절, 22장 46절 등에서는 남색(男色)하는 자들을 쫓아낸 기록들이 있다.
(2) 신약에서의 정죄
동성애에 대한 정죄는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타락한 인간의 죄를 나열하는 로마서 1장 18절 이하에도 분명하게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다. 27절에서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Men committed indecent acts with other men, ...)라고 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동성애를 지칭한 것이다. 성경은 동성애는 "순리대로"(natural relation) 일어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분명하게 다른 모든 성적인 죄들과 동일한 차원에서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을 열거하면서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 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와 함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과 함께 "남색하는 자"(homosexual offenders)를 언급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1장 9-10절에서도 불법을 행하는 자, 불경건한 자, 부모를 치는 자, 살인자, 음행하는 자, 거짓말 하는 자 등과 함께 "남색하는 자"(perverts)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남색이 다른 행위들과 같이 죄악된 행위임을 말하는 것이다.
문맥상으로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정죄를 피할 수 없게 되자 동성애 지지자들은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성애라는 단어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구약에서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카데쉬( )라는 단어는(왕상14:24) 문맥으로나 용법으로 미루어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동성애 지지자들은 신약으로 눈을 돌려서 흠정역(KJV)에서 "남색하는 자"라는 말을 다소 모호하게 번역한 것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흠정역 고린도전서 6장 9절은 "남색하는 자"를 "abusers of themselves with mankind"로, 디모데전서 1장 10절은 "남색하는 자"를 "for them that defile themselves with mankind"로 번역한다. 그들은 "mankind"라는 말의 애매모호함을 들어 신약에는 동성애라는 말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정말 신약에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애매모호한가? 이 두 구절에서 동성애를 지칭하는 그리스어는 "아르세노코이테스"( )이다.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침대에 있는 남자들"(males in bed)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뒷 부분의 "코이테스"라는 말은 영어의 코이터스(coitus)의 어원이 되는 단어이며, 코이터스는 분명히 남녀의 성기의 결합을 의미한다. "남색", 즉 동성애에 대한 신약의 정의는 명백히 "남자가 다른 남자와 성행위를 하는 것"이지 형제간에 하나의 큰 침대를 함께 사용하는 것 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처럼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어떻게 달리 해석할 수 있는가? 성경은 동성애를 암시적으로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분명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한 번도 아닌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정죄한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4. "물귀신 작전"
동성애자들이나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물귀신 작전"을 쓰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의 훌륭한 인물들 중에도 동성애자들이 있었다고 물고늘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노아의 벗은 몸을 형제들에게 고한 함이 동성애자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 관계였다는 희한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들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동성애 집단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개 눈에 똥 밖에 안 보인다"는 한국 속담과 같이 동성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게 되면 남자들이 모여 있기만 해도 동성애자들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할까? 데이빗슨(S. Davidson)이 말한 것처럼 "그처럼 터무니없이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에게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 이런 것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며, 디도에게 말한 바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며 다툼만 일으킬 뿐이다.
5. 죄는 미워하되...
결론적으로 성경으로부터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은 물론 그것에 대해 약간의 긍정이라도 하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지 아담과 철수를 만든 것이 아니다. 동성애에 관한 한 성경은 다른 모든 죄들과 같이 예외 없이, 그리고 매우 단호하게 정죄하고 있다. 하나님은 삶에 대한 구체적인 여러 원리들(계명, 율법, 명령 등)을 주셨는데 이것을 주신 주요한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행동을 분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담의 범죄가 아담과 그 후손들의 모든 환경은 물론 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볼 때(소위 "원죄"라는 것을 통해), 성경적으로 동성애 유전자를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유전학자들은 이와 비슷하게 간음이나 살인, 그 외 강력범죄의 유전자들도, 나아가 선천적 "용맹 유전자"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 유전자가 있다고 해도 이것이 동성애를 성경적으로 받아들일만하게 만든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범죄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범죄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없듯이 "유전적인 성향이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인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동성애 지지자들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동성애자들은 핍박받는 소수이므로 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들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친 이웃 사랑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동성애보다 더 잘못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라도 저들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비록 저들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해도 저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을 긍휼히 여긴다고 해서 이것이 저들에게 목사 안수를 허용하거나 교회 지도자로 세워야 한다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저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격려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저들이 바른 말씀의 가르침으로 돌아오는 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람은 사랑하더라도 죄는 분명히 정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들을 긍휼히 여기면서 저들이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건강한 가정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저들에게는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는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할찌어다"라는 말씀하신 바를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저들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가르치면서도,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잘못된 행위는 용납할 수 없지만 그 행위로부터 돌아서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결국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정죄와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동성애는 미워하되 동성애자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죄는 미워해야 하지만 죄인들까지 미워해서는 안 된다.
- 2002.11.2./19.
동성애 유전자는 "면죄부"인가?
양승훈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shyang@twu.ca)
어제는 어떤 분과 동성애(同性愛)와 관련된 토론을 했다. 그는 동성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고 했다. 이유인 즉 동성애 유전자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성애는 일종의 결핍상태이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신체적 불구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동성애를 죄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아가 동성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의 한 예로서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의 예를 들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이는 그 사람의 잘못도, 그 부모의 잘못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한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나는 그 분에게 성경이 곳곳에서 일관성 있게, 그리고 명백하게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그것은 성경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1. 동성애의 유전적 가능성
과연 동성애는 선천적, 즉 유전적인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인가? 지난 몇 십년 동안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유전적임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여러 과학자들은 동성애적 성향이 유전적일지도 모른다는 몇몇 결과들을 발표했다. 동성애의 유전적 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유전적인 변이는 정상 인구 집단의 1% 내에서 일어나는데 동성애는 10% 정도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동성애의 유전적 가능성에 대한 대표적인 몇몇 결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구조적 가능성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 라졸라(La Jolla)에 있는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의 르베(Simon LeVay)는 주로 에이즈(AIDS)나 이의 합병증으로 죽은 41구의 시신을 부검했다. 41명 중 19명은 남자들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에이즈의 합병증으로 죽었다. 16명은 이성애(異性愛) 남자들이었는데 이들 중 6명도 에이즈 합병증으로 죽었다. 그리고 나머지 6명은 여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여러 가지 다른 원인으로 죽었다.
이들 시신의 연구에 있어서 초점은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의 INAH3라는 핵(nucleus)이었다. 이들이 INAH3 핵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뇌의 이 부분은 어릴 때만 자라기 때문에 핵의 크기가 다르다면 그것은 초기 발달 단계에 존재했던 이유, 즉 환경적 요인보다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생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연구 결과 르베는 일반적으로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에 비해 시상하부의 INAH3 핵이 작음을 발견했다.
(2) 유전적 가능성
다음에는 가계 조사이다. 해머(Dean Hamer)와 그의 동료들은 2단계에 걸쳐 가계 연구를 했다. 우선 그들은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114명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가계를 조사했다. 그리고 후에는 그 중 76명을 선발하여 이들의 가계를 다른 가족들의 가계와 비교하였다. 그 결과 동성애 남자 형제의 13.5%가 동성애자임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가계와 비교 연구해 본 후 그들은 "우리가 가계를 수집함에 따라 엄마 쪽 동성애자가 아버지 쪽 동성애자들보다 더 많음을 알게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의 친인척들을 조사해 혼 후 외삼촌들과 외숙모 사촌 형제들 중에 동성애자들이 많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결과를 근거로 그들은 어떤 유전자나 유전자 그룹이 개인의 성적인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유전자가 동성애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유전자는 남자 유전자인 Y-염색체보다 여자 유전자인 X-염색체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의 2단계 연구는 자연스럽게 세포학적 접근이었다. 이들은 40명의 동성애 형제들을 선발하여 DNA 시료를 채취하였다. 그리고 유전적 관련성을 분석하기 위하여 그들은 이미 알려진 유전자 마커(gene marker)들을 활용하였다. 이들은 실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서 어떤 공통적인 DNA 부위가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40명의 동성애자 형제들 가운데 33명에게서 다섯 개 마커의 세트가 Xq28이라고 알려진 부위에서 나타남을 발견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이들은 남자들로 하여금 동성애적 성향을 갖게 하는 유전자나 유전자들이 이 부위에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3) 혈연적 가능성과 호르몬 분비
다음에는 동성애의 혈연적 가능성이었다. 베일리와 필라드(M. Bailey and R. Pillard)는 동성애 잡지 광고로부터 모집한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그들은 일란성(一卵性) 쌍둥이, 이란성(二卵性) 쌍둥이, 동성애 남자의 양자(養子) 형제 등을 중심으로 동성애자가 되는 숫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쌍둥이 한쪽이 동성애자라면 다른 한쪽도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일란성 쌍둥이 경우 52%,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 22%, 양자인 경우 11%라고 보고하였다. 즉 그들은 동성애자와 혈연적으로 가까울수록 더욱 더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동물 실험을 통해 태아기 호르몬(prenatal hormone)의 양이 동성애적 기질을 결정한다는 보고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성애를 유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선천적 유전자 변형으로 일어나는 질병(disease), 정서장애(mental suffering) 등으로 표현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2. 유전적 성향이 면죄부는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동성애의 유전자설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들에게 많이 발견되는 유전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동성애자들에게 그 유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유전자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성애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동성애적인 성향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성향이 그로 하여금 동성애를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라구나난(J. Ragoonanan)이 지적한 바와 같이 동성애에 대한 유전적 성향(genetic predisposition)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가 직접 유전된 특성(directly inherited trait)은 아니다.
그러면 동성애가 유전적이라면 그 사실이 동성애가 도덕적 일탈(逸脫)이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동성애는 다른 유전적 질병들처럼 하나의 질병에 불과한가?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자유의지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1) 자유의지와 인간의 책임
사실 동성(同性)에 대한 끌림은 정도 나름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라면서 일정 기간 동안 학교나 주변 친구들 중에 동성이지만 마치 이성(異性)처럼 끌리는 친구들이 있었던 기억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은 다른 동성 친구들과는 느낌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그런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사라지거나 후에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대부분 사라진다. 사람마다 이런 성향이 다소 강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우정의 범위 내에 있다. 그런 성향이 있는 것 자체는 정죄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동성애자들처럼 실제적인 어떤 행위로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죄를 짓는 것과도 같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죄의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은 죄에 대한 선천적인 욕구를 갖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타락한 이후 인간은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결심과 노력을 해야 하지만 죄를 짓기 위해서는 결심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죄인됨이 "선천적"이라고 해서 이것이 인간이 죄를 지어도 되는 어떤 보증서가 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결혼한 사람들이라도 간음(adultery)의 충동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그 욕구가 강하고 어떤 사람은 그 욕구가 다소 약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그 욕구를 잘 절제하고 어떤 사람은 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한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유전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천적인 간음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해서 실제로 간음을 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그런 선천적인 욕구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간음을 창조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범죄한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모든 인간에게는 죄의 소원이 있지만 자유의지를 동원하여 이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간음과 마찬가지로 강간(强姦, rape), 짐승과의 성관계를 하는 수간(獸姦, bestiality), 시체와 성관계를 하는 시간(屍姦, necrophilia), 어린 아이들과 성관계를 하는 소아성애(小兒性愛, pedophilia) 등 온갖 성적인 변태나 도착들도 인간의 타고난 "유전적" 죄성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죄성을 갖고 있는 것, 즉 죄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과 의지적으로 선택하여 그 가능성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이다. 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모든 인간들에게는 죄를 짓고자 하는 "유전적" 성향, 즉 원죄가 있다. 이 "유전적" 성향은 성경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죄에 대한 "유전적" 성향이 있더라도 결코 그것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2) 동성애 유전자와 범죄 유전자
동성애 유전설은 차라리 범죄 유전설과 비교하는 것이 낫다. 범죄인들의 심리나 유전자, 골격 등을 연구하는 범죄학(criminology)에서는 범죄 유전자(criminal gene)가 있다거나 범죄인의 골상(骨相)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실제로 여러 대에 걸친 가계(家系) 연구들을 통해 범죄자의 가정에 범죄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데이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죄 유전자로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 모두가 범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그 범죄 유전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범죄인들에게 특정 유전자가 발견되는 빈도가 높을 뿐이다. 결국 개인에게 원함은 있으나 개인이 자유의지를 동원하여 그 범죄 행위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동성애적 성향이 다소 강한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행위는 명백히 인간의 죄성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3) 동성애와 선천적 장애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의 경우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요한복음 9장에 등장하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의 경우와 비교한다. 그들은 나면서 소경된 자는 그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인 것처럼 동성애자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을 선천적 소경에 비유함은 선천성 장애인들에 대한 인격적 모독에 해당한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동성애는 분명히 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를 정신병에 비유하면서 동성애를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실제로 정신병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실정법으로도 관대히 처리한다. 정신병자가 순간적인 발작에 의해 저지른 살인이나 다른 범죄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발작에 의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성애의 경우는 정신병과는 전혀 다르다. 동성애는 자신이 주체할 수 없이 발작에 의해 동성애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비록 그 성향이 어느 정도 유전적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자신의 의지적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장애와 같이 정신병은 말 그대로 병이기 때문에 개인의 모든 삶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만 동성애는 선택이기 때문에 동성애 그 자체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동성애도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성애에 빠지는 사람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부모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자라면서 큰 상처를 받은 경우가 많다. 또한 성인이 된 후에 배우자나 이성으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동성애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앞에서 언급한 정신병에 비교한다면 동성애는 일종의 정서적 장애이며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4) 원죄와 자범죄
선천적인 소경과 동성애를 같은 결핍으로 보는 사람들은 소경이나 그 외 선천적인 장애도 결국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일어났고 동성애도 인간의 타락으로 일어났으니 동일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두 가지를 혼동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원죄(原罪)와 자범죄(自犯罪)를 구별하지 못한 데서 생긴 것이다. 원죄란 엄밀하게 말하면 죄의 성향이지 구체적인 죄의 행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죄의 성향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자범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성애적 성향은 원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나 그로 인해 동성애를 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만일 그러하다면 원죄에 속한 죄의 성향으로 생겨나는 모든 자범죄들을 정죄할 수 없게 된다.
둘째, 이것은 선택의 의미를 무시한 데서 생긴 것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죽음과 더불어 모든 죄와 고통이 온 것은 사실이다.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죄들도 결국 인간의 타락으로부터 온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창세기 3장이나 로마서 8장 등은 모든 자연계도 인간의 타락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생물학적 돌연변이가 인간의 타락의 결과라고 한다면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난 기형아도, 다른 선천적 장애인들도 결국 타락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와 선천적 장애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선천성 장애는 개인의 의지적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지만 동성애는 의지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동성애가 선택의 문제라는 점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가 동성애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성애자였다가 의지적 선택에 의해 돌아서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로부터 쉽게 알 수 있다. 선천적 장애는 의지적 선택의 결과도 아니고, 따라서 의지적 선택으로 그 장애를 벗어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동성애와는 전혀 다르다.
3. 성경 해석의 문제
그러면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가? 성경은 여러 곳에서 명백히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다.
(1) 구약에서의 정죄
창세기 19장 1-11절에 의하면 소돔 사람들의 가장 큰 죄악 중의 하나는 동성애였으며 하나님은 유황불로 이들을 멸하심으로 이들의 죄를 벌하셨다. 소돔 사람들의 죄가 성적인 죄였음은 매우 분명하다. 5절에서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한 것을 NIV 성경에서는 "우리가 그들과 성교하리라"(we can have sex with them)라고 직설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흔히 성별법(Holiness Code)이라고 하는 레위기 18장 22절의 말씀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는 동성애에 대한 정죄이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것이니라." 또한 레위기 18, 19장에서는 금지하거나 명령하는 경고에 그쳤던 규례들이 20장에서는 이 규례들을 어겼을 때 받아야 하는 형벌까지 제시한다. 10-16절은 다른 사람의 아내나 계모, 며느리, 장모와 행음한 자를 죽임 같이, 수간(獸姦)한 자들을 죽임 같이 동성끼리 행음한 자들을 죽이되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한다: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20:13). 성경은 다른 모든 성적인 범죄들과 동일하게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사기 19장 22절에는 어떤 레위 사람이 기브아에 유숙하러 들어갔다가 동성애자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기브아 성읍의 "비류들"이 그 레위 사람을 끌어내라고 요구하면서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we can have sex with him)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동성애자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로 인해 그 레위 사람의 첩이 심한 윤간(輪姦)을 당하여 죽게 된 것을 보면 이들은 폭도들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와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이 일어났다. 사사기 20장의 기록에 의하면 이 전쟁으로 인해 총 6만 5천명에 이르는 장정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 외에도 열왕기상 14장 24절이나 15장 12절, 22장 46절 등에서는 남색(男色)하는 자들을 쫓아낸 기록들이 있다.
(2) 신약에서의 정죄
동성애에 대한 정죄는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타락한 인간의 죄를 나열하는 로마서 1장 18절 이하에도 분명하게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다. 27절에서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Men committed indecent acts with other men, ...)라고 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동성애를 지칭한 것이다. 성경은 동성애는 "순리대로"(natural relation) 일어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분명하게 다른 모든 성적인 죄들과 동일한 차원에서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을 열거하면서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 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와 함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과 함께 "남색하는 자"(homosexual offenders)를 언급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1장 9-10절에서도 불법을 행하는 자, 불경건한 자, 부모를 치는 자, 살인자, 음행하는 자, 거짓말 하는 자 등과 함께 "남색하는 자"(perverts)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남색이 다른 행위들과 같이 죄악된 행위임을 말하는 것이다.
문맥상으로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정죄를 피할 수 없게 되자 동성애 지지자들은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성애라는 단어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구약에서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카데쉬( )라는 단어는(왕상14:24) 문맥으로나 용법으로 미루어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동성애 지지자들은 신약으로 눈을 돌려서 흠정역(KJV)에서 "남색하는 자"라는 말을 다소 모호하게 번역한 것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흠정역 고린도전서 6장 9절은 "남색하는 자"를 "abusers of themselves with mankind"로, 디모데전서 1장 10절은 "남색하는 자"를 "for them that defile themselves with mankind"로 번역한다. 그들은 "mankind"라는 말의 애매모호함을 들어 신약에는 동성애라는 말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정말 신약에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애매모호한가? 이 두 구절에서 동성애를 지칭하는 그리스어는 "아르세노코이테스"( )이다.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침대에 있는 남자들"(males in bed)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뒷 부분의 "코이테스"라는 말은 영어의 코이터스(coitus)의 어원이 되는 단어이며, 코이터스는 분명히 남녀의 성기의 결합을 의미한다. "남색", 즉 동성애에 대한 신약의 정의는 명백히 "남자가 다른 남자와 성행위를 하는 것"이지 형제간에 하나의 큰 침대를 함께 사용하는 것 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처럼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어떻게 달리 해석할 수 있는가? 성경은 동성애를 암시적으로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분명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한 번도 아닌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정죄한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4. "물귀신 작전"
동성애자들이나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물귀신 작전"을 쓰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의 훌륭한 인물들 중에도 동성애자들이 있었다고 물고늘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노아의 벗은 몸을 형제들에게 고한 함이 동성애자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 관계였다는 희한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들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동성애 집단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개 눈에 똥 밖에 안 보인다"는 한국 속담과 같이 동성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게 되면 남자들이 모여 있기만 해도 동성애자들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할까? 데이빗슨(S. Davidson)이 말한 것처럼 "그처럼 터무니없이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에게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 이런 것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며, 디도에게 말한 바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며 다툼만 일으킬 뿐이다.
5. 죄는 미워하되...
결론적으로 성경으로부터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은 물론 그것에 대해 약간의 긍정이라도 하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지 아담과 철수를 만든 것이 아니다. 동성애에 관한 한 성경은 다른 모든 죄들과 같이 예외 없이, 그리고 매우 단호하게 정죄하고 있다. 하나님은 삶에 대한 구체적인 여러 원리들(계명, 율법, 명령 등)을 주셨는데 이것을 주신 주요한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행동을 분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담의 범죄가 아담과 그 후손들의 모든 환경은 물론 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볼 때(소위 "원죄"라는 것을 통해), 성경적으로 동성애 유전자를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유전학자들은 이와 비슷하게 간음이나 살인, 그 외 강력범죄의 유전자들도, 나아가 선천적 "용맹 유전자"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 유전자가 있다고 해도 이것이 동성애를 성경적으로 받아들일만하게 만든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범죄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범죄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없듯이 "유전적인 성향이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인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동성애 지지자들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동성애자들은 핍박받는 소수이므로 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들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친 이웃 사랑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동성애보다 더 잘못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라도 저들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비록 저들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해도 저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을 긍휼히 여긴다고 해서 이것이 저들에게 목사 안수를 허용하거나 교회 지도자로 세워야 한다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저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격려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저들이 바른 말씀의 가르침으로 돌아오는 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람은 사랑하더라도 죄는 분명히 정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들을 긍휼히 여기면서 저들이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건강한 가정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저들에게는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는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할찌어다"라는 말씀하신 바를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저들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가르치면서도,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잘못된 행위는 용납할 수 없지만 그 행위로부터 돌아서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결국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정죄와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동성애는 미워하되 동성애자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죄는 미워해야 하지만 죄인들까지 미워해서는 안 된다.
- 2002.1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