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생각하며
가정을 생각하며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부모를 떠나 한 육체가 되는 것의 비밀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5:33)고 말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만나서 이룬 가정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본래적인 가정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하고 에덴의 동쪽으로 추방되었기에 본래적인 가정을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본래 에덴에서 하나님이 주신 부부의 사랑은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라는 둘만의 것으로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에 대하여 배타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에덴의 동쪽 사람들은 배타성을 저버리고 여러 남자와 여러 여자를 사랑하거나 그 둘만의 배타성이 지나쳐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소외시켜 가정도, 우정도, 사회도 파괴해 버리곤 한다. 에로스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거듭나야 한다. 거기에 본래적인 아내 사랑도, 남편 경외도 있다.
어린 자녀들에게는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엡6:1)고 말씀했다. 한 사람이 어떤 특정한 가정에 태어남은 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운명적인 것이다. 한 가정의 실제적인 주체는 자녀들이 아니라 부모이기에 부모를 잘 만난 자녀들은 행복하다. 반면에 부모를 잘못 만난 자녀들은 적어도 부모 밑을 떠날 때까지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의 일생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자녀는 운명이라는 말 대신 하나님께서 특정한 가정으로 자기를 보내셨다고 고백한다. 그 때부터 ‘주 안에서’라는 단어와 ‘순종’이라는 단어를 조화시키는 법을 깨닫게 된다.
자녀들은 부모가 하나님을 대신한 보호자며 양육자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수직적인 권위가 그에게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순종은 자신의 의견을 동등하게 말하거나 서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따르는 것임을 알게 된다.
성장한 자녀들에게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고 말했다.
가정은 시간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그리고 쇠퇴기를 거쳐 해체된다. 가정의 주체였던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장하고 또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됨에 따라 자신의 가정이 서서히 해체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성장한 자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힘없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순종이 힘을 가진 젊은 부모의 권위 아래 있는 것이라면, 공경은 성장한 자녀가 힘이 없고 늙은 부모의 권위 아래 계속하여 스스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애정(storge)의 속성은 내리 사랑이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는 생득적인 힘의 원천이 없다. 그러기에 인간 사회에는 노인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져 간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에는 네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는 약속이 따른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젊은 부모에게는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고 말씀했다.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storge)하는 것은 생득적인 것이다. 부모의 내리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형태를 모방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기적인 것이다. 자녀들을 사랑하지 못하면 부모 자신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육과 번성을 위한 능력이지만 동시에 이기적으로 파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자기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위대한 피조물임을 보지 못하기에 자기 뜻대로 자녀를 다루게 된다. 부모의 이기적인 사랑은 자녀들의 세계를 파괴하고 그들을 노엽게 만든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먼저 주님의 사랑으로 정화되어야 한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을 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게 된다. 그럴 때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라는 솔로몬의 시가 마음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