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갈대, 생각하는 갈대

브론테 자매의 에로스

남전우 2012. 4. 22. 06:29

 

브론테 자매의 에로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가 어린 여섯 자녀들을 데리고 요크셔의 외지고 황량한 마을 호와스의 목사로 부임한 것은 1820년이었다. 그때 셋째 딸 샤로트는 네 살이었고 다섯째인 에밀리는 두 살, 막내인 앤은 막 태어났다.

이듬해 샤로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몇 년 후 두 언니도 병으로 죽었다. 샤로트의 바로 밑의 동생인 장남 브란웰은 31세, 같은 해에 에밀리는 30세로, 그 다음 해에 앤도 29세로, 그리고 6년 후 샤로트는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모두가 짧은 삶을 살았다. 가난과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그들 작품의 배경에 반영되었다. 에밀리의 대표작 「폭풍의 언덕」과 샤로트의 대표작 「제인 에어」는 1847년에 출판되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 자매들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가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의 한 부분이 표현된 것이 바로 그들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은 같은 산을 올랐다. 그들이 오른 산의 이름은 바로 에로스였다.

에밀리와 샤로트는 같은 산을 올랐지만 서로 산의 반대편에서 길을 찾았다. 그 길은 모두 에로스를 향한 것이다. 그들이 추구한 에로스는 남녀간의 사랑이었다. 남녀간의 사랑의 본질은 에로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문제는 그 에로스가 정화되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있다.

에밀리는 정화되지 못한 길로 에로스의 산을 올랐고, 샤로트는 정화된 길로 에로스의 산을 올랐다. 그것이 바로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이다.

에밀리의 주인공은 캐더린과 히드클리프다. 그들의 무대는 폭풍이 부는 황량한 언덕이다. 그들의 어린 시절의 사랑은 동화로 시작된다. 그러나 동화의 세계는 바로 끝난다.

그리고 원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여, 정화되지 못한 에로스가 시작된다. 그들의 사랑은 유일성과 배타성에 있어서 탁월하다. 바로 에로스의 강력한 특성이다.

그러나 정화되지 못한 에로스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가정도 파괴하고 우정도 파괴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하여, 그들의 불 같은 사랑은 마귀적이 된다.

귀신이 된 캐더린과 귀신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려는 히드클리프의 에로스는 파괴적인 에너지를 발산하여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적인 기독교의 명목적인 아가페를 조소한다.

어린 시절의 제인 에어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바리새적인 기독교다. 심판적이고 위선적인 집안과 기숙학교에서 가난한 제인 에어는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거기서의 탈출은 가정 교사로 간 집의 주인 로체스터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도 에로스는 동화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곧 정화되지 못한 에로스는 한계에 도달하고, 고통으로 화한다. 결혼하려는 순간 로체스터의 미친 부인의 존재가 드러났다. 바로 원죄가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를 떠난다. 바로 이 점이 제인 에어의 에로스와 캐더린의 에로스가 다른 점이다. 제인 에어는 정화의 길을 택했다. 에로스의 유일성과 배타성을 버리고 다시 길을 떠났다.

제인 에어는 휫크로스라는 마을에 버려져 세인트 존이라는 목사 집에 정착하게 된다.

두 누이동생과 함께 사는 세인트 존은 이름 그대로 거룩한 목사님이다. 그는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으로 하늘로부터 소리를 듣고 선교사의 소명을 받았다. 세인트 존은 바로 그런 하나님의 권위를 빌어 제인 에어를 묶어 놓으려고 한다. 사실 연약한 제인 에어는 포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떠나야 했다. 바로 그녀가 체험한 아가페적 사랑은 에로스에게 세례를 주어 정화시킨 것이다. 아가페는 에로스를 구속(救贖)하여 정화시키는 것이지 대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인트 존은 제인 에어의 에로스를 아가페로 대체하려고 하였다. 그를 거부한 제인 에어는 다시 로체스터를 찾는다. 로체스터의 미친 부인은 집에 불을 지르고 불에 타죽었다. 로체스터는 그 부인을 구하려다 화상을 입고 장님이 되어 있었다. 로체스터도 불 세례를 통하여 정화되었던 것이다.

정화된 에로스도 한 사람에 대한 유일성과 배타성의 열정을 갖는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천상을 향하여 승화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