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갈대, 생각하는 갈대

한 해를 보내며

남전우 2012. 4. 16. 06:04

 

한 해를 보내며

 

빨리 찾아오는 겨울 산마루의 어두움은 잎 떨어진 나뭇가지의 짙은 그림자를 깨끗이 지운다. 이젠 코끝에 바람의 느낌이 차가운 12월이다. 이 느낌은 언제부터 가졌고, 또 몇 번이나 겨울이 시작됨을 세었나? 그리고 몇 번이나 더 셀 수 있을 것인가? 또 병이 도지나 보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예전에는 무언가 한 것 없이 한해가 가버렸다는 결핍이 병이었는데, 이제는 아직도 무언가에 집착함이 내 마음에 병을 준다. 이젠 훌훌 털어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삶의 끝에서 강탈당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털어 버리는 것이 현명한 것인 줄 알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과의 거리를 아직도 모르는 것이 바로 나이기에 투쟁의 들판에 서있다.

안식의 땅은 바로 은총이라는 강 건너 저편에 있는데 그곳을 건널 조각배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본다. 성취하는 것도, 초월하는 것도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지난 한해 동안도 등은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마25:3)와 같았던 나의 모습들이 생각난다. 신랑을 사모하여 기다림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지만, 좀처럼 오지 않는 신랑을 기다리다 기름이 떨어져, 기름을 구하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기에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다섯 처녀…그래서 그들은 이름도 미련한 다섯 처녀이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던 나의 모습들…그러나 사모의 열정만으로는 주님을 모실 수 없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2:17)는 말씀처럼 그 사모하는 열정 때문에 그를 배척하고 잃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어두움을 밝혀줄 등잔의 기름이다. 기름 없는 등잔은 어두움을 밝혀줄 수 없어 신랑을 맞을 수 없다.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그때는 기름 떨어진 등잔을 가진 미련한 다섯 처녀가 아니겠는가? 다시 주님 맞을 기름을 충분히 가진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자.

지난 한해 동안도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달란트가 얼마인가를 셈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는 않았는가? 그러나 주인은 많은 달란트를 가진 자나 적은 달란트를 가진 자나 구별 없이 작은 일이라고 하셨다(마25:21,23).

문제는 장사를 잘하여 주인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불리는가,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불리는가에 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을 두려워하여 달란트를 땅에다 잘 보관해(?) 두었다가 고스란히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주인을 두려워한 이유는 주인은 완벽하고, 능력이 많은 자임에 반하여 자신은 부족하고, 무능력한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의 모습이 나의 본질임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연약함이 나의 본질임을 깨달아 두려움이 내 삶을 지배하여 생의 의미를 잃고 기업을 내 팽개친 시간들…그때 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다. 다시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자.

지난 한해 동안도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 양으로 위장하였지만 실상은 염소 같은 삶을 살았는가? 양과 염소가 똑같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양의 눈에도 염소의 눈에도 임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마25:37,44). 그러나 양과 염소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양에게는 지극히 작은 자가 보이는데 반하여 염소에게는 지극히 작은 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그들이 바로 지극히 작은 자들이다.

임금님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최상의 것으로 섬길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가 내 앞에 나타날 때도 그렇게 할 것인가?

지난 한해 동안 임금님을 만난 적은 없다. 그리고 임금님이 자기와 동일시한 지극히 작은 자를 만나본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양으로 위장한 염소인 것이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라 하였다. 지극히 작은 자를 만나는 양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