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갈대, 생각하는 갈대

한계에 다달랐을 때

남전우 2012. 4. 13. 06:15

 

한계에 다달랐을 때

 

새로운 느낌과 그에 따른 열정으로 정신없이 달리다가 그것이 더 이상 새로움을 주지 않고 그에 따라 열정도 식어갈 때…그 때에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더구나 그 당사자가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라면 그 질문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그리고 한 공동체가 그런 상황에 빠진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새로움이라는 동인(動因)이 있어 삶의 열정을 만들어 낸다. 이 세상에 태어남은 이 세상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기는 열심히 먹고, 보고, 들으며 성장한다. 그 열정은 삶의 본능이다.

그러나 곧 삶이란 평범한 것이고 죽음이라는 한계를 만나게 되어 열정도 식어가게 된다. 곧 죽음의 본능과의 투쟁이 시작된다. 공부를 하고,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고, 사회활동을 하는 시작의 새로움과 또 다시 평범함 그리고 한계…더구나 가정과 국가 그리고 교회라는 공동체의 한계를 느낄 때…그리고 자신이 그 공동체의 중심에 있을 때…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베드로는 어부였다. 그도 처음 배를 타고, 처음 그물을 던졌을 때, 그 새로움에 흥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반복되는 일상이 되고, 생존의 수단 이상의 창조적인 것이 못됨을 보면서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 때 예수께서 그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고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되었다. 그후 예수님을 따르는 그의 열정은 남달랐다. 그래서 말썽도 많았지만 어쨌든 온 힘을 다하여 예수님을 좇았다.

그렇게 좇아가던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것이 베드로가 두 번째로 맞이한 한계였다. 더 이상 갈 곳도 없기에 그의 열정도 함께 사그라졌다. 그 때 베드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는 일이었다(요21:3).

그 한계를 극복케 한 분은 또 다시 예수님이셨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셨다. 그분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베드로에게 주어진 새로움이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성령께서 오심과 교회가 탄생하는 것을 목도했다. 그것은 그에게 새로움으로 불타는 열정을 주었다. 그는 외쳤고 예루살렘 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해 갔다. 가난도 핍박도 이길만한 열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한계가 왔다. 그것은 공동체의 새로움과 열정에 역행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바로 죄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인 죄였다(행5:1이하). 베드로는 그러한 공동체의 한가운데 서 있는 지도자였다.

베드로는 그 죄를 찾아 심판을 내렸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 내의 죄가 척결되자 다시 새로움과 열정이 살아나 교회는 부흥해 갔다.

오늘 우리 조국이 처한 한계의 실상은 바로 부정부패라는 죄의 문제다.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가 처한 한계의 실상도 물신 숭배와 비윤리적인 죄의 문제다. 우리 모두는 그 한가운데 서있는 지도자들이다. 우리 죄를 척결하지 않으면 새로움도 열정도 없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또 한계에 부딪쳤다. 그것 역시 공동체의 새로움과 열정을 앗아가는 것으로 바로 연약함의 문제였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구조적인 취약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게 되자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원망하였다.

연약함이 죄는 아니지만 공동체를 한계에 빠뜨리는 큰 문제이다. 열두 사도들은 함께 모여 의논을 하였다. 그래서 일곱 집사를 세워 구제의 문제를 전담케 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왕성하게 전파되고 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하였다(행6:7).

오늘 우리 조국과 한국교회가 처한 한계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 구조적 연약성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노사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갈등 등 많은 원망을 낳고 있다. 부자인 도시 교회와 가난한 농어촌 교회의 불공평, 잘 사는 목회자들과 너무 가난한 목회자들…이러한 취약한 구조를 개혁해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다시 새로움과 열정이 회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