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갈대, 생각하는 갈대

버림받은 사울을 슬퍼함

남전우 2012. 2. 28. 16:52

 

버림받은 사울을 슬퍼함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을 추억한다. 그를 추억함은 나의 영혼을 그에게서 반추하기 위함이다.

에드워드 매카트니가 말한 것 같이 사울은 깊은 강물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는 사람과도 같았다. 또 운명과 대결하는 고대의 어떤 영웅과도 같았다. 폭발하는 화산과도 같았고 거친 파도와 폭풍과 천둥, 번개에 지칠 대로 지쳐 파손된 배가 바다를 항해하다가 마침내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암초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는 것과도 같았다. 실로 무서운 혼돈이었다.

사울의 질투, 의심, 분노, 잔인성, 신성모독과 함께 영혼의 무서운 고독과 양심의 가책은 참으로 무서운 비극이며 심판이었다.

그는 자신의 심령에 깃들인 악령을 퇴치하여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다윗에게 애원하기도 하다가 또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리고는 또 돌이켜 다윗을 위해서 눈물도 흘렸다. 죄의 유혹과 죄책 그리고 후회와 연민의 혼돈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신접한 무당을 찾아가 자신의 영적 아버지인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맞아 애통의 시를 지었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아니할지어다”(삼하1:21).

길보아 산에 어두움이 덮일 때 사울은 블레셋 군대의 함성에 떨며 호위병 두 사람만을 데리고 무녀의 집을 찾았다. 죽은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려는 것이다.

겉옷을 입은 한 노인의 혼이 땅에서 올라왔다. 그가 바로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사울을 죽는 날까지 만나려 하지 않았던 사무엘이었다. 사무엘, 그는 새벽 동녘에 아름다운 청춘의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왕을 삼아 입맞추던 선지자가 아니었는가?

그 밝음과 열정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 그는 어두움이 짙은 밤에 어두운 지하에서 올라와 사울이 여호와의 버림을 받아 블레셋에게 죽을 것이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임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 저주의 예언을 하는 혼이 사울을 지도해 주고, 사울을 위하여 울어 주고, 아픔을 안고 사울을 만나지 않던 사무엘이란 말인가? 그럴 수 없다. 그는 사무엘을 가장한 천사일 것이다.

사울의 운명이 베냐민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에서 이스라엘 왕이 나와야 하는 예정적인 섭리 때문에 주어진 것인지 아닌지는 나는 알 수 없다.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죄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간음과 살인을 저지른 다윗의 죄보다 더 중한 것인지 아닌지도 나는 모른다.

단지 활기차고 아름다워 동녘에 기름부음을 받았던 청년이 기력이 쇠하여 추한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가야할 길을 잃고 고통의 나락으로 추락한 것을 함께 슬퍼할 뿐이다.

그 슬픔 가운데 브라우닝의 시 “그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 비록 낭비되고 모독한 인간이지만, 그를 받으시고 아주 버리지는 않으셨다”라는 구절이 위로를 준다. 바로 사울은 나의 영혼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울과 같이 혼돈된 나의 영혼을 버리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동녘의 아름다운 청춘은 없다. 어두움이 짙게 깔린 길보아 산의 블레셋 군대처럼, 흑암 가운데서 내 영혼을 노리는 악령들에 둘러싸여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다.

그 악령들은 속삭이고 있다. 사울에게 아말렉을 살려 두라고 속삭인 것처럼 나의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라고 속삭인다. 악령이 사울을 번뇌케 한 것처럼 나를 고통의 투쟁으로 내몰려고 한다. 이미 나의 왕좌가 떠났는데도 그것에 미련을 갖게 한다.

그것을 버리면 새로운 길이 있는 것을 누가 나에게 말해줄 것인가? 다윗이 블레셋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했을 때 사울이 그들을 따라 같이 노래했다면 그에게 구원의 길이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악령은 지금도 그 시기심에서 절망과 분노의 부르짖음을 해보라고 속삭인다. 애정이 타락하면 질투로 변하는 것이 세상 이치임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그 거대한 물결의 소용돌이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인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1:26). 그 사랑이 나를 구원할 것인가? “육체가 아닌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