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6:19-34, 하나님과 물질에 대한 개괄

남전우 2011. 6. 14. 06:09

 

마6:19-34, 하나님과 물질에 대한 개괄

 

하나님을 떠난 물질적인 추구에 대하여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하늘에 쌓는 보물과 땅에 쌓아둔 보물(19-21절)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과 재물(22-24절) 그리고 세 번째는 믿음과 염려의 문제이다(25-34절). 그러나 이 전체의 주제는 한 가지로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은 두 가지 경우이다. 첫째는 죄성을 가진 인간의 본능적인 물욕 때문이다.

인간이 갖고 잇는 물욕으로 인한 문제는 물질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 땅에 쌓아두는 것이다. 그것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것으로 여눤하지 못하고 또 지킬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였다. 인간은 물질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기울게 되어 잇다. 인간에게 물질은 보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늘에 쌓아둘 때 그 마음도 그곳에 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물질을 섬길 것인가에 대한 도전을 한다. 인간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거기에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기본이 될 때, 사람을 사람하게 되고, 물질은 섬기는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은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물질은 사용하는 것이지 섬김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되는 두 가지 경우 중 다른 하나는 염려 때문이다.

오늘 무엇을 먹을 것인가? 내일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의 미래의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염려이다. 더 나아가 자신뿐 아니라 가족 등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염려다. 이러한 염려는 결국 미래를 위하여 오늘 재물을 쌓아 두게 만든다. 그래서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게 만든다. 결국 제자들이 물질에 대하여 가장 경계할 요소는 물욕 보다는 생에 대한 염려에서 오는 물질의 노예상태가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다른 표현인 것이다. 공중의 새를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사람들을 돌보시지 않겠는가? 하루 있다가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시겠는가? 결국 믿음이 적은 것이 문제다. 그리고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를 키울 수 없는 인간, 즉 미래에 대하여도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인간임을 자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인간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