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팔복 개요 / 마5:3-12

남전우 2011. 5. 16. 09:16

 

팔복 개요(마5:3-12)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팔복’(5:3-12)과 ‘소금과 빛’(5:13-16)은 산상설교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의 순서상 서론이라기보다 제자로서의 본질적인 것, 즉 존재(being)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팔복이 자기 자신 스스로의 존재를 다룬다면 소금과 빛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존재의 의미(doing)를 다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팔복을 첫 사복과 나중 사복으로 수분하면서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해석한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성 어거스틴과 요한 웨슬레를 들 수 있다. 웨슬레는 “참된 기독교는 언제나 심령이 가난함에서 출발하여 팔복의 순서대로 나아가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완전한 경지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첫 사복은 그리스도인의 자신의 문제 즉 내적인 것으로, 나중 사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외적인 것으로 보았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분류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나중의 4복으로 외적인 것으로 분류한 8절의 “미음이 청결한 자”는, 3절의 심령이 가난한 자의 심령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식(consciousness)의 변화라는데 일차적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에 비하여, 무의식(unconsciousness)의 변화까지 의미하는 것이다. 웨슬레는 마음의 청결을 이웃사랑(긍휼)과 연장선상에서 보아서 완전한 성결에 이른 상태로 본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점은 마태복음의 고대역본 중 많은 것이 4절과 5절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는 점이다. 어거스틴도 이러한 역본을 사용했다.

 

펜톤(F.C.Fenton)이 5장의 “복 있는 자”와 23장의 “화 있는 자”를 대칭으로 비교한 것을 살펴볼 때에도 4절과 5절의 순서가 바뀌는 것에 일리가 있다. 이렇게 역순으로 대칭시켜 비교한 것의 대부분은 이해가 가겠지만 23:25와 5:6, 그리고 23:27과 5:4의 비교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같다. 23”25나 23:27은 모두가 겉과 속이 다른 외식, 즉 위선의 상태를 지적하는 것으로 그러한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마땅히 겉과 속이 똑같은 상태로 되어야 한다. 인간이 겉과 속이 가장 일치하는 순간은 주리고 목마른 순간과 애통해 하는 순간임에 틀림없다. 주리고 목마른 절대 절명의 순간에는 인간은 자신을 위장하는 외식과 위선의 상태에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큰 슬픔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겉모습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체면과 상관없이 큰 애통은 그대로 바깥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복 있는 자들이 될 것을 요구하셨고, 가망이 없는 거짓 이스라엘들에게는 저주를 선포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