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 다닌 바울 / 행12:25-19:20
쫓겨 다닌 바울(행12:25-19:20)
오늘 부활 주일 아침에는 사도행전의 5번째 단락(행12:25-16:5)과 6번째 단락(행16:6-19:20)의 묵상을 마치고 난 이후 바울의 전도 사역 전반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면서 바울은 계속 핍박과 훼방자들에게 쫓겨 다니는 삶을 살았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바울은 회심 이후 다메섹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고 도망하여 예루살렘에 왔지만 거기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변론하다가 죽이려고 대드는 바리새인들을 피하여 고향인 다소로 피신하였다. 그것이 바울의 피신 전력의 시초였다.
바나바가 다소에서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와서 동역자로 삼았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지로 파송하였다. 아마도 바나바가 전도팀의 책임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전도 여행의 첫 목적지로 구브로를 택했던 것같다(추정).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으로 바나바가 잘 아는 곳이기 때문이다. 구브로를 거쳐 남갈라디아 지방으로 가는 것이 이들의 로드맵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2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의 문제로 심히 다투고 헤어졌을 때 바나바는 다시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자기 고향 길리기아를 거쳐서 남갈라디아 지방으로 다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구브로에서는 박수 엘루마의 훼방이 잇엇지만 핍박을 받지는 않았다. 이 때까지는 바나바가 인도자였던 것같다. 아마도 박수 엘루마에게 행한 바울의 능력이 있은 후부터 바울이 이들의 영적 리더쉽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후 줄곧 바울이 사역의 주체이고 바나바는 보조적인 역할만 기록되고 있다.
남갈라디아의 첫 도착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행13:45.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행13:50-51). 이렇게 쫓겨났다.
프루지아 종족으로 알려진 이고니온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행14;5-7). 이렇게 도망하였다.
루가오니아의 두성 루스드라와 더베에서는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행14:19-21). 돌로 침을 당해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
남갈라디아에서의 사역은 AD47-48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주도한 훼방과 핍박과 박해를 받아 쫓겨나거나 도망하면서 사역을 하였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쉼과 재충전을 하였고 예루살렘 공의회(AD49년 추정) 후에 다시 바울은 실라를 동역가로 삼아 수리아, 길리기아를 거쳐 첫 전도지였던 남 갈라디아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다.
마게도냐에서는 로마화된 도시 빌립보에서 점치는 여종의 주인의 고소로 관가에 잡혀가 매맞고 옥에 갇힌 후 풀려 나서 로마 시민권자라고 밝히자 관리들은 조용히 그곳을 떠날 것을 청하여 그곳을 떠났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행16:19-24).
데살로니가에서는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행17:5-10). 유대인과 그들의 사주를 받은 불량배들의 소동으로 밤중에 그곳을 떠났다.
베뢰아에서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행17:13-14). 데살로니가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을 피하여 급히 바다까지 갔다.
그래서 바울은 일행과 헤어져 아가야 지방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예정에 없이 홀로 아덴에 온 바울은 기회를 잡아 복음을 전했지만 냉대 속에 고린도로 떠났다.
홀로 고린도에 온 바울은 로마에서 추방당하여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동역자와 동업자로 삼믄다. 이 때부터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하였다. 고린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잇었던 곳으로 보인다. 어려움이 잇었지만 바울이 1년 6개월을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행18:9-11). 주님의 환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문제를 만들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행18:11-18) .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때는 AD 51년 경이었다.
바울의 마지막 사역지 아시아의 에베소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잇는 곳이었다. 성령께서 처음에 길을 막으셨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울이 사역을 시작한 곳이다.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가장 긴 3년이나 되었다. 에베소의 사역으로 온 아시아 사람들이 모두 복음을 들었다. 특히 능력 대결 사역이 있었다. 결국 아데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충동으로 소요가 일어나게 된다.(행19:23-41) 그러나 바울은 소요가 일어나기 전에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갈 비전을 갖고 잇음을 성경은 밝힌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행19:21-22)
다음에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