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에 온 바울(행19:1-7)
에베소에 온 바울(행19:1-7)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19: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19: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19: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19: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에베소에 왔다. 이런 언급을 한 이유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는 것과 아볼로와 어떤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지만 그 이상의 설명은 없다. 다만 제자들로 불리는 12명과 아볼로는 관계가 잇는 것 같다. 그들의 상태가 아볼로의 상태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전도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했던 것처럼 바울은 12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하여 가르치고 예수를 소개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안수하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바울의 에베소 콤플렉스>
만약에 내가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여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데 계속하여 길이 막히다가 결국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판명이 나고 그 일 대신에 다른 일이 주어지거나 아니면 그것으로 끝난다면,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내 마음에는 무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앙금이 남을 것 같다. 그 앙금을 콤플렉스라고 하자.
나의 사역 가운데서도 그런 앙금이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특히 요즈음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바울의 에베소 사역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지만 아직 시원한 결론은 없다. 그래서 계속 묵상의 주제로 삼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바울에게 에베소는 그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16:6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 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우여곡절 끝에 드로아까지 오게 된 바울은 밤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건너와 자신들을 도우라고 하는 환상을 보게 되고 마게도냐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로 인정하고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기에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는 없다. 다만 때와 우선순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마 그 당시 바울의 아시아 길을 성령님이 막은 것은 그 때가 아직 아니었거나 아니면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역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었는지는 우리가 확정할 수 없다.
다만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시아의 주도인 에베소의 사역이 바울에게 예루살렘과 로마로 여행하기 전에 마지막 사역처였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마지막 사역처라는 것은 그곳이 그 만큼 중요한 곳이라는 점과 아울러 그 만큼 어려운 지역이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역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가던 중에 에베소에 들려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그곳에 남겨 두고 떠날 때 사람들이 더 체류할 것을 권하자 바울은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행18:22)고 말하고 에베소를 떠났다. 바울의 마음에는 에베소에 대한 열정이 있었지만 성령님에 의하여 길이 막혔던 경험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바울에게 에베소는 인간적으로도 쉽지 않은 사역지로 여겨졌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의 에베소는 인구 50만이나 되는 대도시로 상업이 발달하여 부유하였고, 이오니아 경기가 열리던 곳으로 도시 기반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로마 황제를 숭배하던 신전이 3개나 있었고, 숭배하던 아데미 여신전의 규모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일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미신이 성행하여 에베소의 부적은 로마제국 내에서 유명하였다.
바울 자신도 에베소에서 당한 어려움에 대하여 여러 번 회상하였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메시지를 할 때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행20:19)에 대하여 말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고전15:32)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8,9)고 하였다. 바울의 에베소의 사역은 매우 힘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아볼로에 대한 언급은 다섯 절로 아주 간단하다(행18:24-28). 아마도 아볼로는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후에 도착했던 것 같다.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다. 사도행전의 지적은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만 알기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하나님의 도를 좀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다고 언급한다. 어쨌든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얼마동안 사역을 한 것은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볼로는 아가야로 떠나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아 고린도 교회에서 아볼로의 역할은 상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안디옥을 떠난 바울이 에베소에 온 것은 아볼로가 에베소를 떠난 이후이다. 행19:1은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을 다녀 에베소에 왔다’고 이 사실에 대하여 언급한다. 아마도 바울의 원칙인 ‘다른 사역자가 닦은 터 위에 사역을 하지 않는 것’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볼로를 인간적으로 의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바울이 2년에서 3년 가까운 긴 기간 동안 아시아 전역에 복음을 전한 사역지 에베소에 오게 된 과정은 쉽지 않았고 긴 시간이 걸렸다. 바울의 사역 가운데 이러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에베소는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콤플렉스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에베소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나도 나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역의 방향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