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전도 / 행17:1-9
데살로니가 전도(행17:1-9)
(17: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17: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17: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17: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17: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17: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암비볼리와 아볼로니를 방문 한 후에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였다. 암비볼리(암피뽈리)는 네압볼리(까발라) 남동쪽 63Km 지점의 스트리몬 강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다. 원래는 '에네아오디'(9개의 길)라는 곳으로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페르시아의 크세르 크세스가 강을 건너면서 이 지방의 소년과 소녀 각 9명을 생매장한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BC. 437년 아테네 사람들에 의해 암피뽈리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건설이 이루어졌고 BC.358년 필립 2세에 의해 점령되고 BC.168년 피드나 전투를 개시로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 당시 로마인들에 의해 분할되었던 4지역 가운데 한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아볼로니아는 데살로니가 북동쪽 57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마케도니아의 뻬르디까스 2세에 의해 할키다인 들에게 수여된 도시이다. 로마시대에 건립했던 에그나티아(Via Egnatia)의 흔적이 남아 있고 '볼 비'라는 큰 호수가 있다.
데살로니가는 BC.315년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장군이었던 카산더에 의해 건설되었다. 카산더는 후에 알렉산더 대왕의 의붓 자매였던 아내(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따라 이곳을 "데살로니가"로 부르게 하였다. 이 신설 도시에 식민된 자들은 카산더에 의해 파괴된 지역 내의 약 26개 성의 거민들이었다. 주전 167년 마게도냐가 네 개의 구역으로 분할되었을 때 데살로니가는 스트리온강에서 악시우스강까지 이르는 제2구역의 수도가 되었다.
BC.148년에 마게도냐가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데살로니가는 주도가 되어 마게도냐 주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그 후 BC.42년에 데살로니가는 안토니와 옥타비아누스를 도운 일로 인해 "자유 도시"가 되었다. 로마는 데살로니가를 매우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통치했으며, 로마 총독이 부임해 있기는 했지만 군대를 주둔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는 다른 헬라 도시들처럼 몇 명의 관원들과, 원로원, 그리고 민회 등을 통해서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바울은 세 번의 안식일에 성경을 강론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유대교에 입교한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예수를 믿고 바울을 따르자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저자 거리의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소동을 일으키며 바울 일행을 잡고자 하였으나 찾지 못하자 야손 형제를 잡아 읍장 앞에 세워 로마 황제를 거역하여 예수를 임금이라 한다는 죄목으로 고소하는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