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행전

유대주의적 교인들의 주장 / 행15:1-5

남전우 2011. 4. 10. 05:44

 

유대주의적 교인들의 주장 (행15:1-5)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15: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15: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15: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수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구브로와 밤빌리아 그리고 비시디아와 루가오니아를 말하는 남 갈라디아) 등지에 이방인 전도가 이루어졌다. 이방인 전도로 인하여 이방인이 교회로 들어오게 됨에 따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유대주의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선택된 백성인 유대인들의 선민 사상에 따른 견해 충돌이 생겼다.

 

초기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대상이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먼저 유대교에 입교하는 것이 선행되어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유대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으로 여전히 여겼다. 이러한 생각이 무너진 것이 베드로가 환상을 본 후 이방인 고넬료  가속들에게 복음읗 전한 것과 이를 예루살렘 교회가 알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확인한 때(행11장) 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문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방인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하여도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교제는 어느 정도 허용되는 것인가부터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처럼 율법을 지켜야 되는가에 관한 것이다. 사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거이 예루살렘 교회의 정서였기 때문이다.(행21:20, 21 참조)

 

유대로부터 안디옥 교회에 내려온 사람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바리새파 출신 신자는 이방니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과 가르침은 안디옥 교회에 큰 풍파를 일으켰다.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서는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 이것은 비단 안디옥 교회의 문제 뿐 아니라  이미 복음이 전해진 이방 지역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이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형제 중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듣고자 하였다. 바나바와 바울은 베니게, 사마리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이 교히들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이방 전도와 열매에 대하여 보고를 하였다.

 

* 갈라디아서에 대한 문제를 잠시 언급해 보아야 하겠다. 갈라디아서가 바울에 의하여 쓰여진 서신에는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문제는 갈라디아서 수신 지역이 어디인가에 대한 것과 언제 어디서 쓰여진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수신 대상에 대한 설은 두 가지가 있는데 소위 북갈라디아 설과 남갈라디아설이 그것이다.

 

북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가 로마의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리적, 인종적인 것으로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시에 거쳐간 이전의 갈라디아(행16:6, 18:23)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첫째 누가의 일반적 용례라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지역적 명칭으로 사용하는 용례는 로마행정구역이 아니고 전통적인 지리적이고 인종적인 것이다.둘째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시 이 지역을 거쳐갔다. 셋째 갈라디아서에서 '갈라디아 사람들아..'라고 호칭하는 것은 인종적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갈라디아서에 바울이 병들었다는 기록이 잇는데 1차 여행시에는 바울이 병들었다는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남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가 로마의 정치적, 행정 구역의 명칭을 따르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바울의 1차 여행 당시 전도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의 남 갈라디아 지역이 갈라디아서의 수신 교회들이다. 남갈라디아서를 주장하는 근거로는 첫째 사도행전 등에는 북갈라디아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다는 점이다.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이라고 언급하는 서신서임을 볼 때 북갈라디아에 대한 언급이 그저 거쳐간 정도의 언급을 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바울의 전도 여행의 결실이 언급된 곳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 남 갈라디아이다. 둘째 구제 헌금에 참여한 갈라디아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고전16:1)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하는 대표로는 남갈라디아 더베 사람 가이오만이 명단에 언급되고 있다(행20:4). 이것은 갈라디아라는 성서의 지칭이 남갈라디아를 포함해서 쓰고 있다는 반증이다. 셋째 갈라디아서에 바나바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갈2:1, 9, 13) 이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나바를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바나바는 1차 여행시에 바울의 동역자로 남갈라디아 전도에 동행하였다. 넷째 갈라디아서에는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는 갈라디아서의 주제가 율법에 대한 문제이기에 그에 관하여 매우 중요한 회의인 예루살렘 공의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상식적이지 않다. 그러기에 갈라디아서는 1차 전도 여행 직후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에 보내진 서신이다. 그러면 그 대상은 남갈라디아 교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 시기로는 남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경우 AD48-49년 사이로 1차 전도여행과 예루살렘 공의회 사이로 보고 장소도 수리아 안디옥으로 본다. 북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경우 AD51-52년경에 고린도나, AD57년 경에 에베소에서 쓰여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