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파 사람들 / 행6:1-7
헬라파 사람들(행6:1-7)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문제가 공동체의 내부적인 문제에서 죄성에 관한 것이었다면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 빠지게된 문제는 공동체의 내부적 문제 중에 연약성으로 기인 것이다. 교회는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헬라파 살람들 중에서 7명을 선택하여 세웠다. 이 일은 헬라파 유대인들의 지도력이 부상하는 게기가 되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분산, 흩어짐의 의미로 팔레스타인 밖으로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디아스포라’의 시작은 주전 6세기 이스라엘과 유대가 멸망함으로 바빌로니아나 이집트로 유배당한 이루부터 이방 지역에 흩어져 살게된 유대인들을 총칭한다.
1세기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수가 얼마인지는 통계가 없고 학자들마다 추산이 달라서 정확하게 말 할 수는 없다. 대략 로마제국 인구의 7-1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1세기 로마제국의 전체 인구를 7000만 정도로 추산할 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수는 500만에서 700만 명 정도였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100만에서 많게는 200만까지 정도로 추산하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5배나 많은 것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들에 주로 살았다. 이들은 헬라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반대로 이방인들은 이들로부터 유대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지칭하는 이방인들이 바로 이들이다.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방인들도 많았다. 복음이 로마제국 전 지역으로 확산되는데 이들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지칭하는 예루살렘 교회 내의 헬라파 유대인들이란 바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역이민으로 귀환하거나 율법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 오거나 기타 이유로 유대에 일시적으로 체류하던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 중에 상당 수가 예수를 믿고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원래 유대의 토박이인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의 비율이 예루살렘 교회내에서 비율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당 수 였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구성의 다양성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구조적 취약성으로 작용한 것이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 빠진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처럼 누구의 악의나 의도적인 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원망이 일어나는 것으로 발전해 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도들은 교회를 모이게 하고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헬라파 사람들 7인을 세워 이 문제를 해결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사도행전 전체 가운데 조명하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이 해석이 하나님의 섭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사도행전의 메시지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헬라파 교인들의 부상은 사도행전 후반부에 언급된 로마제국, 이방의 땅 끝을 향한 선교를 이루기 위한 전략적인 준비인 것이다. 예수께서 히브리파 열 두 사도들을 세운 것이 교회를 시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면 예루살렘 교회가 구조적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곱 명의 헬라파 지도자를 세운 것은 이방 선교를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헬라 문화권인 로마제국을 선교하는데 적합한 사람들은 헬라 문화권의 사람들일 것이다. 바로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은 히브리즘과 복음 그리고 헬레니즘을 모두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곱 명의 헬라파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제2의 지도자 그룹으로 선정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미래에 있을 이방 선교를 위한 선교적 구조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구제사역을 위한 명목으로 선출된 일곱 지도자들은 후에 그 일 보다는 복음 전도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다. 스데반과 빌립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의도와 생각 보다 더 위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에루살렘 교회는 교회의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한 것이 헬라파 사람들을 세운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방세계인 헬레니즘 세게의 선교를 위한 도구로서 이들을 예루살렘 교회에서 부상 시킨 것이다. 엘레니즘 선교를 위하여는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은 분명한 일이다. 앞에서 있었던 또 다른 교회의 내부 문제였던(죄성과 관련한) 아나니아 건에서도 아나니아와 대조되는 인물로 바나바가 소개 되었는데 이도 헬라파 유대인으로 후에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울을 인도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