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없는 무화과와 강도의 굴혈이 된 성전
열매 없는 무화과와 강도의 굴혈이 된 성전(막11:10-19)
(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1: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1: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1: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1: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1: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마가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첫날에는 성전에 들어가 둘러 보시고 베다니로 나가서 일박 하셨다. 이튼날 베다니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에 다시 입성하여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고, 상과 의자를 엎으셨다. 그리고 날이 저물자 다시 성 밖으로 나가셨다. 마태복음은 이러한 순서 보다는 사건의 내용 중심으로 성전을 정화한 사건과 무화과 나무를 심판하신 사건을 사건별로 묶어서 그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베다니는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 등 예수님을 좇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일행은 그들 집 중에 한곳에서 유숙을 하였을 것이다. 이튼날 시장하신 예수님은 잎사귀가 있는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았다. 열매를 찾지 못하자 에수님은 그 나무를 심판하였다. 사실 이 때는 무화가 열매를 맺는 철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심판하셨는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심판하신 것은 일종의 비유적 행동이다. 비유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한 여호야김 예레미아스는 이 사건을 예수님의 행동적인 비유라고 분류하였다. 비유는 어떤 사실을 설명해 주기 위하여 나란히 던져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비유 자체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설명해 주기 위한 도구이며 수단인 것이다. 무화과는 줄 곧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바로 예수님은 열매를 기대하는 이스라엘이 열매 없는 상태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고자 하심이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 오신 예수님은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상과 으자를 엎으셨다. 예수님은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너희가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던 곳이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여러가지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데 편리함을 도모하자는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상행위를 하는 곳으로 전락 시켰던 것이다. 종교적 모습만 남고 생명력을 잃어 버린 성전을 정화하신 것이다. 이것도 예수님이 상징적으로 행하신 것으로 결국 손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고 참다운 성전인 자신을 나타내시고자 함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행동을 하는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궁리했지만 백성들이 무서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