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요한의 제자들의 이의제기-금식(막2:18-22)

남전우 2010. 12. 21. 06:46

 

요한의 제자들의 이의제기-금식(막2:18-22)

 

(2: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2: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금식은 특별한 정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는 수단(means)중 하나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법에 따라 이레에 한번씩 금식을 하였다. 종교적으로 형식화 되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예비하기 위하여 온 선지자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와 자복하는 것이 그의 메시지였다. 따라서 그 상황에서 금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거나, 금식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될 오해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금식을 부정하거나 금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다운 금식을 가르치셨다.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한 중에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에 종교적 위선을 경계하셨다(마6:16-18). 어쩌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제자들은 은밀한 중에 금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논점을 진정한 금식의 의미를 다룬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것 즉 기독론적인 가르침으로 끌고 가셨다. 인간이 금식하는 이유가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한 것인데 하나님이신 자신이 인간들과 함께 있는 중이다. 그것은 마치 혼인잔치에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지금 제자들은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기에 금식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는 변증이다. 신랑을 빼앗길 때는 자신의 십자가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해당하는 답으로 볼 수 있다.

 

낡은 옷에 생베를 붙이지 않는다. 새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지 않는다. 새포주는 새부대에 넣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천국에 대한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새것으로 종교적으로 이미 낡아버린 그 시대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답으로 볼 수 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젲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막2:18b)는 적대자들의 도전(막2:1-3:6) 전체와 연결되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