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것 / 눅10:38-42
더 좋은 것(눅10:38-42)
(10: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38-42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것으로 등장인물이 마르다와 마리아인 것으로 미루어 갈릴리 베다니에서 있었던 일로 추정된다. 이와 키아즘적으로 짝을 이루는 눅18:15-17은 마19:13-15, 막10:13-16과 같은 내용으로 두 번째 십자가 예고 이후에 유대지경에서 있었던 일로 기록되었다.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적인 교훈을 이해하기 위하여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을 분류해 보기로 하자. 먼저 예수님이 있다. 그리고 마르다와 제자들을 같은 부류로, 마리아와 어린 아이들을 같은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마르다와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려는 마리아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지 못하였다. 그것으로 인하여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견책과 교훈을 받았다. 마리아와 어린 아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며 말씀을 듣거나 만져 주심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좋은 편을 택한 것이고 또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셨다.
Evans는 신8:1-3과 눅10:38-42, 눅18:15-17 을 연관 시켰다. 특히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받을 때에 인용하신 3절의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심이니라”를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와 연관지었다. 그리고 신8:1-3에서 광야의 생활은 이스라엘을 낮추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은 눅18:15-17에서 어린 아이의 가장 큰 특성인 낮은 자와 연고나 지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주인공은 마르다이다.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고, 접대하는 준비를 하고, 불평한 주체가 바로 마르다이다. 그리고 예수님도 마르다를 가르치신 것이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서 마음이 분주했다. 물론 그 준비는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서 그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자기 동생을 명하여 자기 일을 돕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분주함의 원인을 지적하시고 마리아가 선택한 것이 ‘좋은 편’이라고 하셨다.
앞의 눅10:25-37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율법에 이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는 ‘좋은 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위한 사역을 하는 것보다 더 우선시 되는 중요한 일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은 그의 발아래서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그의 뜻을 알게 되다. 그것이 ‘좋은 편’이며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길’이다.
많은 경우 사역의 분주함에 빠져 이러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늘 확인하고 돌아 가야할 자리가 바로 예수님 그 자체이다.